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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9 조회수887 추천수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Hear this! A sower went out to sow.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the birds came and ate it up…
Some seed fell on rich soil and produced fruit.
It came up and grew and yielded thirty, sixty, and a hundredfold.”
He added, “Whoever has ears to hear ought to hear.”
(Mk.4,3-9)
 
 
제1독서 2사무 7,4-17
복음 마르 4,1-20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얼른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 분실신고를 한 뒤에 혹시나 몰라 집 안 전체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갑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돈도 아까웠고, 카드와 신분증을 재발급 받기 위해 할 수고를 생각하니 귀찮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아까움과 귀찮음을 모두 감수해야만 하겠지요.

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묵상을 하다가 새벽 묵상 글에 쓸 좋은 글귀가 생각난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묵상 글을 쓰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묵상을 통해 생각해 둔 좋은 글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불과 30분 전에 기억했던 것을 잊어버린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 지요. 한참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다른 내용으로 묵상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전날에 잃어버렸던 지갑에 대해서는 아까워하면서, 잊어버린 좋은 묵상거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비록 부족한 묵상이지만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잃어버린 지갑의 가치보다 훨씬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갑은 아까워하면서도, 잊어버린 묵상은 더 값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까워하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더 값진 것은 소홀히 하면서 별 것 아닌 것들에 연연하고 있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즉, 세상 것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길, 돌밭, 가시덤불과 같다고 하시지요. 사실 주님께서는 인간 영혼의 밭에 육화하시어 우리 인간 본성 안에 당신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문제는 그 씨를 받는 우리의 영혼의 밭이 어떠한가 입니다.

세상 것에 얽매여 있으면 그 좋은 씨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이 주님의 말씀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내 영혼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명인 사랑 이라는 비료를 통해서만 비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의 밭을 잘 가꿀 수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문을 열어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우리 자신, 그리고 삶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마이클 J.로즈).


자비의 희년에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지인 갑곶입니다.

 

눈을 쓸면서…….

어제 아침, 제가 있는 갑곶순교성지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쌓이는 눈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눈을 보면서 ‘예쁘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길이 미끄러워서 순례객들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눈을 치우는데 힘들겠다는 생각도 생깁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갖고 아침식사 후, 성지 직원들과 함께 넓은 성지의 곳곳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치우니 힘이 들면서 땀이 조금씩 나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기뻤습니다. 약간의 수고로 순례객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순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기쁨이 더 커지더군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내가 억지로 해야 할 ‘일’로만 여긴다면 그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얻을 무엇인가만을 떠올려도 기쁨은 함께 할 수가 없겠지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 안에서 얻는 것은 분명히 더 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보다는 나를 위한 삶을 더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세상의 것을 더 얻으려는 욕심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 일 안에서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무엇’을 찾는다면 어떨까요? 삶 자체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갑곶성지에 눈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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