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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9 조회수967 추천수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Is a lamp brought in to be placed under a bushel basket
or under a bed, and not to be placed on a lampstand?
"Take care what you hear.
(Mk.4,21)
 
 
제1독서 2사무 7,18-19.24-29
복음 마르 4,21-25
 
어떤 분이 제게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십니다. 기도도 되지 않고, 또 미사에 참석해도 느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미사 때에는 이 시간에 등산이라도 가면 몸이라도 튼튼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신앙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과연 있는 것일까요?

사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보다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상상 안 돼. 의지가 약해.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등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규정하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여기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신앙생활에 적합한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어둠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빛이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무엇인가를 비추는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숨겨진 것도 또 감추어진 것도 드러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세상의 빛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 빛이 될 수 없다면서 어둠을 선택한다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의 역할은 내게서 완전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빛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한 선행, 봉사, 사랑의 실천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때 세상으로부터는 받는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더 많은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정년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반대인 세상의 어둠이라고 규정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고, 우리의 의지만 세울 수 있다면 분명히 훌륭한 세상의 빛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균적인 사람은 자기 일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능력의 25%를 투여한다. 세상은 능력의 50%를 쏟아 붓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100%를 투여하는 극히 드문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앤드류 카네기).


오늘은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세상의 빛.

어렸을 때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옛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조신부가 눈이 쳐져서 순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 꽤 까칠했어.”

그러자 봇물 터지듯이 다른 친구들도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저만 예뻐해서 부러워했다는 말도, 똑똑했다는 말도, 운동신경이 둔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솔직히 선생님들이 저를 예뻐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 같지 않았거든요. 또 똑똑하지도 않았고 친구들에게 까칠하게 굴었다는 기억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말이 다른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참 낯설게만 들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도 맞장구를 치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말해주는 것을 보니 그런 모습들이 분명히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제 자신은 그런 어린 시절의 저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더군요.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알 수가 없겠지요. 자기 얼굴에 묻은 것을 스스로 직접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분명히 그런 모습이 있었나 봅니다. ‘내 몸이니까 내 더 잘 안다.’라면서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빛이 아니라면서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완벽한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합당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갑곶성지의 주보 성인이신 복녀 심조이(바르바라)와 복녀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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