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1 조회수1,15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131/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1코린12,31-13,13)



1코린12.31절은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14장에서 보면 코린도 교회는 방언으로 인해 문제가 야기되었다. 따라서 바오로는 방언보다 더 큰 은사인 예언, 능력 행함, 병 고치는 은사 등을 사모하라고 권고한다. 그런 후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더욱 뛰어난 길이란 13장과 14,1에 언급한 은사들을 사용하되, 하느님의 사랑을 동기와 매개로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은사들을 의미 있게 하는 방편, 곧 길이지, 또 다른 은사가 아니다. “사랑은 모든 다른 재능들의 가치와 무가치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하느님의 본질이다!


1코린13,1-3절은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꾕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옳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여기서의 사랑아가페로서 인간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오, 이성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구별된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통해서만이 방언을 비롯한 각종 은사들(12,28-29)을 의미 있고 유익하게 만들 수 있다. 곧 방언이나 예언이나 능력 행함 등이 위대한 은사들일지라도 그것들이 혼적인 사랑, 곧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 곧 내 영 안에 계시는 그분의 사랑을 따라 시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14,1).


사랑(아가페)”이란 무엇인가?

1요한4,16절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선언한다. 곧 생명은 하느님의 본질이며 사랑은 하느님의 본질의 본성으로, 곧 생명의 표현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요한15,13-14절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한다. 이 사랑의 계명 수행의 척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러한 형제애를 실천함으로써 제자들은 예수의 친구가 된다! ! 사랑의 척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오늘 본문 1코린13,4-7에서 바오로는 사랑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정의하고 있다. 곧 사랑이란 오래 참고, 친절하며, 투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화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딤을 포함한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묘사는 사랑의 계명을 펼쳐 놓은 것처럼 들리며(루카6,27-35; 로마12,9-21),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사에서 취하신 예수의 처신을 묘사한 것과 흡사해 보인다(1베드2,23). 여기에 나열된 사랑의 정의들은, 사랑이 다름 아닌 하느님 자신임을 깨닫게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이러한 미덕들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내 영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제 그 사랑을 살아내라고 중보기도 하신다! 알렐루야

 

영적인 사람 바오로는 갈라2,20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느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 그는 영 안으로 넣어졌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므로(갈라2,20)”, 곧 내가 삶속에서 그리스도를 살아내므로, 내 영 안에서 그분이 하시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간적인 자랑이나 이기심을 교묘히 숨긴 자기 의()와 자기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모든 권유나 격려나 명령은 반드시 성령과 함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

 

우리는 사랑합시다! 사랑합니다! 라는 인사말을 수시로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는 인사말이다. 그러나 그 영적인 의미는 나의 생각, 감정, 의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곧 내 안에 계시는 그분으로 인하여,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13,9-12절은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곧 코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모든 은사들도(8) 하느님에 대한 지상적 인식의 불완전성과 지식의 불완전성이 하느님과의 완전한 교제 안에서 끝이 날 때에 그칠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랑으로 눈을 뜨기까지는 구리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같이 모든 것이 애매할 것이다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에서, “그 때에는이라는 말은 다음 세대, 곧 하늘 나라( 왕국 시대)를 가리킨다. 또한 온전한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와 대비되는 성숙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대에서도 사랑의 생명을 삶으로써 오는 세대를 미리 맛볼 수 있다

 

13,13절은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믿는 이의 실존의 기본적이며 결정적인 차원이다(1테살1,3,5-8; 갈라5,5-6; 히브10,22-24).

이 셋은 비록 믿음과 희망이 보이는 실체로 바뀌어지는 경우에도 존속하며 여전히 유효하다(2코린5,7; 로마8,24-25). 그러나 사랑 안에서 하느님은 이미 지금 성령을 통하여(로마5,5) 자기의 영원한 본질을 쏟아 주신다. 그러므로 사랑이 이 중에서 으뜸이다!


다시 말한다면, 믿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희망은 믿음을 굳게 지켜 믿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분의 사랑으로 믿는 이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함을 가리킨다(1요한4,9-11).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 중에 사랑이 으뜸인 까닭은, 13,7절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곧 사랑이 믿음과 희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며(7), 사랑은 하느님의 본질에 속한 것이고(1요한4,7,16), 인간의 사랑도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1요한3,16).


!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