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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신부의 희망 한 스푼] 숨어 피는 꽃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3 조회수1,527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양승국 신부의 희망 한 스푼-숨어 피는 꽃


 

매년 2월 2일 봉헌생활의 날을 맞이할 때 마다 하느님 앞에 송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과분한 은총을 소낙비처럼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나는 과연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가? 성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릴 것이 너무 없어 부끄러운 하루를 지내면서 존경스런 선교사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구 반대쪽, 극단의 가난 속에 살아가는 토착민들의 다정한 어머니요 친구, 주치의로 살아가시는 수녀님의 책상 앞에는 이런 좌우명이 붙어있답니다. "한곳에 오래도록 머물러야 뿌리를 내린다." 그러면서 수녀님께서는 웬만해서는 바깥 외출이나 휴가를 떠나지 않으신답니다.


 

또 다른 훌륭한 선교사 수녀님께서는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하시는 말씀 "그 동안 선교지에서 일하느라 너무 바빠 기도할 시간이 부족했었는데 이제야말로 마음 편히 기도할 순간이다."며 하루 온 종일을 기도 속에 보내신답니다. 그리고는 원장 수녀님께 이런 부탁도 드렸답니다. "제게도 담당 청소 구역을 주십시오!"


 

요즘 1960년대 초반 20대의 나이로 소록도로 들어가셔서 40년 이상 한센병 환우들의 천사로 사셨던 마리안나, 마가렛 두 오스트리아 수녀님들의 미담이 다시금 화제입니다. 당시 소록도 병원 책임자의 표현에 따르면 "백로 두 마리가 사뿐히 섬에 내려앉았다."라고 할 정도로 젊고 아리따운 수녀님들이었답니다.


 

섬에 도착한 두 수녀님의 삶은 그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의 삶이었습니다. 당시 소록도에는 수많은 한센병 환우들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간호사 자격 소유자였던 두 수녀님의 봉사는 가히 초인적이고 영웅적이었답니다. 격리 조치로 인해 당시 소록도 한센병 환자 수는 6천명에 달했는데 의료진은 겨우 5명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수녀님들의 하루 일과는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두 수녀님의 삶이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그토록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봉사활동이 입소문을 타게 되자 여기저기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고 무슨 무슨 상을 수여하겠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었습니다. 두 분의 원칙은 한결같았습니다. '숨어 피는 꽃!'


 

회갑이 되어 주민들과 병원 측에서는 감사의 표현으로 회갑잔치를 준비하자 '기도하러 갈 시간!'이라며 홀연히 사라지셨답니다. 본국에서 보내오는 생활비는 단 한 푼도 남김없이 환우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가는 귀향길 그녀들의 뒷모습, 처음 소록도 들어올 때 가져왔던 낡을 대로 낡은 여행용 가방 달랑 하나!


 

연세가 드신 두 수녀님은 40년 간 동고동락했던 한국인 간호사가 정년퇴직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아쉽지만 큰 결단을 내립니다. 이제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더 있어봤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는 판단에 두 수녀님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이른 새벽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연히 연안여객선에 몸을 싣습니다. 광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야 간략한 편지 하나를 그토록 사랑했던 소록도 주민들에게 부쳤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전에 떠납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뒤늦게 두 천사가 섬을 떠난 것은 알게 된 소록도 주민들은 갑작스런 생이별의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일시적이고 집단적인 맨붕 상태에 빠졌답니다. 두 수녀님을 가족이나 친구처럼 여겼던 환우들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열흘 이상 성당으로 출근해서 두 수녀님을 위한 기도에 전념했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두 수녀님에 대해 이렇게 기억합니다. "저희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진정 살아계신 성모님이셨습니다." 두 천사 수녀님의 사심 없는 봉사를 잊지 못하는 소록도 주민들과 고흥군은 두 분 수녀님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답니다.


 

이제 한분은 치매로 또 다른 분은 대장암으로 힘겹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데, 그분들의 침실 문에는 아직도 평생토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좌우명이 한글로 적혀 있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여기저기서 현대 수도생활의 다양한 도전들 앞에서 걱정이 많습니다. 수도자들의 신원의식 약화, 소비주의, 극단적 개인주의, 무기력, 열정의 상실, 기쁨의 상실, 공동체 정신의 약화, 건강염려증...


 

그렇다면 이 시대 봉헌생활자들이 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측면들은 어떤 것일까요? 그래서 봉헌생활이 지상천국, 산위의 마을, 등경 위의 등잔이 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우리 수녀님들이 그 비결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심 없이 청빈의 도를 지키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루 이틀 봉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평생에 걸쳐 꾸준히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쁘게 헌신하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헌신을 마지못해 한다든지 잔뜩 인상 쓰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가득한 얼굴로 하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로 복음의 기쁨을 표현하며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헌신과 봉사가 깊은 하느님과의 일치, 다시 말해서 진실한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당부에 따라 이 땅위 모든 수도자들의 얼굴이 보다 활짝 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면 좋겠습니다. 실없어 보이더라도 상처투성이인 세상을 향해 틈만 나면 환한 미소를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존재에 감사하며, 우리 얼굴을 보고 기뻐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치유되며, 우리와 함께 다시금 희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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