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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4 조회수1,051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They said, “Where did this man get all this?
What kind of wisdom has been given him?
What mighty deeds are wrought by his hands!
Is he not the carpenter, the son of Mary,
and the brother of James and Joseph and Judas and Simon?
And are no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Mk.6,2-3)
 
 
 
제1독서 2사무 24,2.9-17
복음 마르 6,1-6
 
지난 토요일, 제가 있는 성지에는 새 식구가 생겼습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라는 종인 두 마리의 개를 키우게 되었지요. 솔직히 이제 막 태어난 어린 강아지가 아니라서 걱정이 되었습니다(2살, 5살입니다). 주인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조금씩 적응하더군요. 특히 좁은 집에서 살다가 넓은 성지를 마구 뛰어다니니 무척이나 신나합니다. 목줄을 풀어주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닙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풀어줄 수는 없지요. 혹시라도 큰 몸집에 사람들이 놀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개집으로 데려옵니다.

처음에는 이 부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저한테 오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는 데에 집중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해서 먹이를 주고 산책을 시켜주니 이제는 이름을 부르면 그 중 한 마리는 저를 향해 곧바로 뛰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다른 한 마리도 저를 향해 뛰어옵니다.

처음에는 이름을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름을 부르면 반응을 하고 달려옵니다. 어쩌면 저를 믿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통해 먹이를 얻을 수 있으며, 때로는 맛있는 간식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런 반응에 저의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 집니다. ‘드디어 내 목소리에도 반응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특별 간식을 주기도 합니다.

문득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신앙을 아직 접하지 않았을 때에는 주님의 부르심에 도저히 반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옳은 삶인지, 어떤 것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인지도 분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신앙을 접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신앙은 접했지만 아직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십니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의심하고 또 못마땅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도 듣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믿음 없는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복음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가 없었다.”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즉,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도 덤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이, 믿음도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내 맘 같지 않은 지금.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것은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다. 산다는 게 내 맘처럼 되지만은 않는 것. 그렇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강세형).


성지 피정의 집 벽에 붙어 있는 성경 말씀.

 

하지 않은 말도 듣기

한 남자가 부부싸움 후에 신부님을 찾아갑니다.

“신부님, 저는 매일 아내와 싸웁니다. 이제 그만 싸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간청에 신부님께서는 아주 간단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달 동안 아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한 달 뒤에 남자는 찾아서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신부님 말대로 하니 정말로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또 다른 과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자, 이제 아내가 하는 말뿐만 아니라, 아내가 하지 않은 말에도 귀를 기울여보세요.”

말을 듣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하지 않은 말도 들을 수 있는 것을 강하고 굳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필요하지만,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이러한 믿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지 커피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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