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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십자가부터 받아들여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6 조회수991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6년 다해 연중 제5주일


<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


  
복음: 루카 5,1-11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십자가부터 받아들여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고기가 매우 많이 잡히는 기적을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가 한 순간에 많은 소득을 거두었다면 당연히 기뻐해야겠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청합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교만한 모습입니다.

 

일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불량청소년들을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즈타니 선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죽음의 문화로 내몰리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탓임을 깨닫고는 수천 명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 밝은 삶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얼굴에 구타당한 흔적이 있고 약물에 취해있는 한 소녀를 만납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입에 담기도 거북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녀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작은 주점을 하다가 단골손님과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그 후로 술을 자주 마시고 외동딸인 그녀에게 성적인 폭력까지 가하였습니다. 그녀는 낙태를 두 번 해야 했고 유일한 위로인 본드를 흡입하며 몸을 파는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 아버지가 많은 술로 인해 안 좋아진 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자 딸에 대한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자신이 아는 술집에 취직시켜놓고 그 아이의 월급을 모두 가로챘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 나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녀는 아버지를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감쌌습니다. 그러나 미즈타니 선생은 참을 수가 없었고 아버지를 신고하여 죗값을 치르게 하고 다시는 딸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동 상담소에 보내져 치료를 받게 하였습니다. 상담소의 소개로 큰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호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착한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씩 이전의 삶을 다시 갈망하다가 반 년 후 폭력조직 중년 남자의 애인이 되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3년 만에 그녀의 친구에게 의료보험증을 빌려달라고 전화가 왔기에 그녀의 친구와 함께 그녀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녀의 처지는 말을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피폐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은 실컷 노는데 자신은 재밌게 살지도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의 비참한 처지였습니다.

그녀는 다시 재활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미즈타니 선생은 그녀가 이용당하며 얻은 병을 고쳐주고 약물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에 넣어주었습니다. 퇴원날짜만 기다릴 무렵 미즈타니 선생은 또 한 번 가슴 아픈 소식을 들어야했습니다. 그 아이가 재활모임에서 어떤 중년 남자를 만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미즈타니 선생은 깨달았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인 미즈타니 선생을 찾아왔고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며 간청하였습니다. 미즈타니 선생은 망설임 없이 그럼, 우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라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미즈타니 선생은 소개해 준 한 젊은이와 결혼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충실히 살고 있다고 합니다.

[참조: 미즈타니 오사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인간이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말은 처음부터 이미 하느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주는 쾌락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그 주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낌새가 생기면 상대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오늘 베드로가 그러한 모습입니다. 주님은 나는 네가 추구하는 행복을 수천 배로 줄 수 있다라고 하시며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길이 자신을 버리는 길임을 알고 자기를 버리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겸손함을 가장하여 예수님께 떠나가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당에서 봉사하라고 하면 자신은 능력이 안 된다는 말로 거부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참 겸손은 성모님처럼 !”라고 하며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를 교육하십니다. 끊임없이 잘못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름보다 당신을 따름이 훨씬 더 행복함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만드십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죄에 떨어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십니다. 물에도 빠지게 하시고 당신을 모른다고 배신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는 이유는 지금까지 섬겨왔던 주인의 실체와 참 주인이 되시는 당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교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주님은 죄를 통해 이전 주인을 섬기는 이의 비참과 불행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시고 결국 당신께로 뛰어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미즈타니 선생은 어느 날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 근처 파친코 주인에게 두들겨 맞는 한 소년을 구합니다. 소년은 실에 묶은 자석을 이용해서 파친코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은 그를 잘 설득하여 야간고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폭력조직에 가입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의 등에는 커다란 용 문신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미즈타니 선생은 그를 폭력조직에서 나올 수 있도록 설득하였습니다. 혹사만 당했던 그도 빠져나오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를 데리고 폭력조직 사무소에 찾아들어갔습니다. 자신도 매우 두려웠지만 보스를 만나 단판을 지으려던 것이었습니다. 보스는 두 번 다시 자신들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며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그 아이가 자신들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왔기에 붙잡고 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미즈타니 선생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각오를 다지고 폭력조직을 찾아갑니다. 소년은 겁에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고 우두머리는 우리도 체면이란 게 있는데, 약속을 어겼으면,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라며 선생의 손가락 하나를 원했습니다. 미즈타니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손가락 하나를 잃는 아픔은 매우 컸다. 그러나 소년의 미래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로 돌아갔고 도쿄의 중국음식점에서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되기를 꿈꾸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했던 작업이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만이 그를 사랑하는 분이심을 믿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가 십자가의 길이라 부릅니다.

제가 교구 성경봉사자들과 이번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죄를 덜 지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골고타에서 미사를 하고 무릎을 꿇고 오래 기도를 했지만 십자가의 고통이 좀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무덤 경당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대변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 거의 토할 뻔 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장소에 어떻게 이런 더러운 것들이...’

그렇지만 문을 닫았습니다. 매우 어두웠지만 소변을 보았습니다. 대변이 발에 묻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구토가 나오려는 직전에 이런 음성이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똥이 더럽니? 내가 네 죄를 위해 또 네 안에 들어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아니? 사실 네가 죄를 섬기면 너와 똥과 이 땅은 큰 차이가 없단다. 사람은 죽으면 다 흙이 되니까. 그러나 하늘인 내가, 하느님인 내가 너희 안으로 너희 죄를 씻어주기 위해 들어오는 것은 사람이 그 똥 속으로 처박히는 것보다 혹은 그 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임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가 혹은 미즈타니 선생의 손가락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를, 자아를 쫓아낼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십자가의 고통이 바로 자신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부활 후에 고기가 많이 잡히는 기적을 보고는 더 이상 주님께로부터 다라나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리스도께로 헤엄을 쳐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용기는 십자가로부터만 나옵니다.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신다면 십자가의 신비를 끊임없이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십자가만이 우리 해방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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