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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7 조회수867 추천수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King Herod heard about Jesus,
for his fame had become widespread,
and people were saying,
“John the Bapt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mighty powers are at work in him.”
Others were saying, “He is Elijah”;
still others, “He is a prophet like any of the prophets.”
But when Herod learned of it, he said,
“It is John whom I beheaded. He has been raised up.”
(Mk.6,14.16)
 
 
 
제1독서 집회 47,2-11
복음 마르 6,14-29
 
요즘에 전화를 참으로 많이 받습니다. 다른 전화는 아니고 강의 부탁 전화입니다. 안식년 기간 중에 미리 받은 강의 부탁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겠지만, 지금 현재는 강의나 방송 모두 거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좀 더 갑곶성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다음 달부터는 매일 미사를 한 대씩 늘렸거든요. 더군다나 갑곶성지에서 피정 지도도 직접 하기 때문에 성지를 도저히 비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까지는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달려갔었는데 거절을 하게 되니 정말로 죄송한 마음에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그런데 저보다 좋은 강의하시는 분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저를 초대해주시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지만, 더 좋은 분을 모시라는 뜻인 것 같네요.”

아무튼 많은 전화를 받으면서(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내 강의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면서 문득 이렇게 강의를 많이 하게 된 첫 번째 계기를 만들어주셨던 형제님이 생각났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나서 보좌 신부로 어느 본당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초짜 신부라 강론 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지요. 그래서 주석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식의 강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론이 끝나자마자 한 형제님께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신부님, 강론을 하셨는데 무슨 말씀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신 것입니다.

당시에 강론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강론에 대한 비판을 직접 들으니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동시에 그 형제님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미사 후에 조용히 제게 말해도 될 것을, 왜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는 것인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제관에 돌아와 강론을 읽으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지요. 제가 준비한 강론인데, 제 자신도 무슨 말인지를 도저히 모르겠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이해한 것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조금 더 쉽게 말하려고 하다 보니 저절로 많은 예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원고를 보지 않게 되었지요. 제가 이해한 내용이고 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스타일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은지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부탁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강론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의 말만 들었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들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지극히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을 떠올리면 옳지 못한 헤로데에게 엄중하게 경고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왕실 가족의 타락한 윤리 형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세례자 요한의 올바른 말을 듣지 않았던 헤로데입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헤로디아 딸의 죄로 기울어지는 말을 듣고는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고 맙니다. 올바른 말은 따르지 않으면서 옳지 못한 말에 대해서는 자신의 맹세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따르는 헤로데의 모습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그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라고 말하면서 불안함을 간직하게 되지요. 이러한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처럼 어떤 말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올바른 말을 듣는가 아니면 올바르지 않는 말을 듣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올바르지 않는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올바르지 않는 말에는 항상 유혹이 함께 합니다. 그 유혹과 함께 어떤 핑계도 동반하게 되지요. 반면 올바른 말은 세례자 요한의 경고처럼 아픔을 동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쓴 약이 몸에 좋다’라는 말도 있듯이, 아픔을 주는 그 올바른 말이 나를 더 좋은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과연 어떤 말을 듣는데 익숙한지요? 듣기 싫고 나를 괴롭히는 말이라 할지라도 정말로 올바른 말이라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며, 먼 훗날 ‘그때 그렇게 하길 잘 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것입니다.

맹세는 말에 불과하고 말은 빈 바람에 불과하다(S.버틀러).


현재의 갑곶성지 입구. 어제의 사진과 비교해보세요. 정말 많이 바뀌었지요?

 

실패를 받아들입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대인공포증이 심하고, 특히 여성에 대한 대인불안이 심했던 19세의 남자 대학생이 어느 날 한 달 안에 100명의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모험 시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겨우겨우 어렵게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100명 중 단 한 명의 여학생만이 데이트에 응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명조차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떨까요? 이 남학생의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일까요?

외관상으로는 100퍼센트 실패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남학생은 크게 성공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대인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직면치료를 통한 수줍음 극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대중 강연의 명강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 심리학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선정되기도 한 ‘앨버트 엘리스’ 박사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를 받아들일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는 상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야외 미사터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
원래 갑곶성지 입구에 계셨던 성모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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