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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9 조회수914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8일 설
 
Blessed are those servants
whom the master finds vigilant on his arrival.
(Lk.12,37)
 
 
제1독서 민수 6,22-27
제2독서 야고 4,13-15
복음 루카 12,35-40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설날인 오늘, 올 한 해도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며칠 전, 갑곶성지에서의 인천교구 사제 피정을 끝낸 뒤에 저는 강화내의 신부님들께 설 선물을 들고 인사를 다녔습니다. 1월 11일에 인사이동이 된 후에 인사 한 번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거의 한 달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신고식 겸해서 설 인사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날이 바로 사제 피정이 끝나는 날인 2월 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인사 드려야 할 신부님을 찾아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인천교구 원로사목자로, 지난 2월 1일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 나라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죄송했고 안타까웠습니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던 제 자신이 얼마나 밉던 지요. 피정 끝나는 2월 5일이 인사하기에 딱 맞는 날짜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 날짜면 너무 늦지도 않은 충분한 날짜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문 늦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딱 맞고 충분한 때는 바로 ‘지금’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분들이 결심을 세우곤 하십니다. 그런데 이를 언제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지금’인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지금의 어려움이 해결된 후에? 믿음이 생기면? 언젠가 때가 되면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 모두 지키기 힘든 결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인이 왔을 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서있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생전에 이미 살아 있는 성인이라는 호칭을 듣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모두 곧바로 하늘 나라에 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나 미사를 봉헌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달라면서 오히려 전구를 부탁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친한 친구 신부님의 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미사나 기도를 해주지 않아서 지금 연옥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주님 앞에서 떳떳할 수 없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설 명절인 오늘 특별히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제대로 준비하기 힘들기 때문인 것이지요.

‘설’인 오늘, 우리는 제2독서의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조금이라도 떳떳해질 수 있도록 영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불어 모든 이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미사나 기도를 통해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순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의 삶인 하느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준비가 안 된 자는 내일은 더욱더 안 되어 있을 것이다(오비디우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에 들어갈 숫자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쉽게 정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숫자를 보고는 규칙에서 어긋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가진 생각은 ‘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틀렸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진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네요. 문제가 틀렸다고 하면서 쉽게 정답을 내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주 이렇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다른 정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만이 정답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도 한 번 정답을 찾아보십시오. 문제가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구요. 문제는 정확합니다.



‘?’안에 들어갈 숫자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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