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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 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14 조회수1,188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13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to repentance but sinners.
(Lk.5,32)
 
제1독서 이사 58,9ㄷ-14
복음 루카 5,27-32
 
약 두 달 가까이 어깨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통증도 심해지고 팔이 잘 올라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진단을 내렸지요.

‘이게 오십 견이라는 것인가 보다. 벌써 오십 견이 내게 온 건가?’

제가 아는 지인에게 어깨 통증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근육이 찢어져도 그런 증세가 온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혹시 정말로 근육이 찢어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오십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아침마다 하는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 받는 것이 먼저겠지만, 계속된 바쁜 일정과 명절 연휴가 겹쳐서 병원 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팔을 아예 쓰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명절 연휴가 끝난 그저께 11시 미사를 끝내자마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어깨의 통증이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걸. 어깨를 많이 써서 더 안 좋아졌나 보다.’라는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고, 초음파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이런 검사 후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오십 견’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아프다고 팔을 쓰지 않아서 통증이 더 온 것이라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걱정했던 근육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시면서요.

의사 아닌 사람의 말만 듣고 스스로 판단해서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행동이 오히려 더 몸을 좋지 않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적이 너무나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즉, 들어야 할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듣지 않아도 되는 말에는 왜 이렇게 집중을 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레위라는 세리를 부르십니다. 당시 세리의 모습을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돈 욕심이 가득하고, 이 소유욕이 대단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것을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의 따위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갖다 바쳤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습니다(로마에 갖다 바치는 로마 화폐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서 이 돈을 만지는 사람은 우상숭배에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돈만 많이 벌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욕먹을 것, 돈이라도 많으면 내 앞에서는 함부로는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레위라는 세리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시는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단정 짓는 당시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말만 들었다면 레위는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 하느님께 대한 구원을 포기하면서 다른 세리들처럼 그저 ‘돈’만을 따르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는 예수님의 말을 듣습니다. 그 결과 진정한 구원의 선물을 얻을 수 있었지요.

어떤 말을 들으면서 살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말만 들으면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에 반해 주님의 말씀은 전혀 듣지 않아서 구원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사람들의 생각이란 몇 년, 몇십 년, 아니 몇 세기를 흐르면 바뀌는 것들이니까요(파울로 코엘료).


비 오는 갑곶성지.

 

뿌린 대로 거둔다.

남편이 퇴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쪽 발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어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지요. 이것만 해도 정말로 감사할 일이라면서 기뻐했습니다.

장애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장애를 가지고서 할 수 있는 일은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내는 장애로 다리를 절고 무능한 남편이 점점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무시하면서 ‘절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절뚝이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창피해서 더 이상 그 마을에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해서 다른 낯선 마을로 이사를 갔지요. 아내는 남편을 그동안 너무 무시했다는 반성을 하면서 이제 ‘절뚝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신 ‘박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글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자기를 향해 ‘박사 부인’이라고 불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판단하면 나 역시 판단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먼저 베풀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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