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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22 조회수1,210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21일 사순 제2주일
 
Then from the cloud came a voice that said,
“This is my chosen Son;
listen to him.”
(Lk.9.36)
 
 
제1독서 창세 15,5-12.17-18
제2독서 필리 3,17─4,1

복음 루카 9,28ㄴ-36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패트릭 맥콘록(Patric McConlogue)은 노숙자라 할지라도 훌륭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노숙자 한 명을 만났고, 그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100달러나 자바스크립트 전문서적 중 하나를 주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서적을 달라고 한다면 저렴한 노트북을 함께 주고 매일 1시간씩 프로그래밍을 알려 주겠습니다.”

이 노숙자는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100달러를 선택했을까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100달러 대신 서적을 받고 프로그래밍 공부 하는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그는 프로그래밍 학습 4주 만에 스마트폰 앱 계발을 착수할 수 있었고, 3개월 후 완성한 앱을 판매해서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한 선택과 미래를 위한 선택. 당연히 미래를 위한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늘 망설입니다. 순간의 선택은 지금 당장 얻는 결과이지만, 미래를 위한 선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으며, 그래서 탁월한 선택이 아닌 최악의 선택이라며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위의 예를 조금 바꿔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한쪽에는 현금 1억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느님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봉사의 길이 있습니다. 현금 1억으로 지금 당장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의 길로는 하느님을 훗날 하느님 앞에 가게 되었을 때 인정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일까요? 더욱 더 세상의 것과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한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지금 당장의 작은 만족이 아닌,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따르라고 하시지요.

오늘 예수님을 쫓아갔던 제자들은 거룩한 변모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황홀함을 체험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나서서 여기 눌러 살자고, 그래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느님을 위한 초막을 지을 수 있을까요?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말을 한 것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구름 속에서 이런 소리가 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어떤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일까요? 지금 당장의 만족을 위해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삶도 아닙니다. 비록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의 것을 추구하면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만족을 위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한 순간의 만족을 위한 삶이 평생 후회하는 삶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 자체가 지식이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성 그레고리우스).


타볼산 성당 안의 벽화.

 

결혼식 주례를 서고서....

어제 결혼식 주례가 있었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말했던 어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의 이 결혼이 후회되는 행동이 아니라 참 잘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결혼이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사람들은 제게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신부님, 결혼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잘 하신 거예요.”

솔직히 신부된 것이 잘 했다는 것인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잘 했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면 혼자 사는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결혼으로 인해 삶의 제약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다는 것이지요.

결혼하는 날만 행복하지, 이 날이 지나면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말씀은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히 솔로로 있을 때보다는 활동의 제약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크기가 커진다면 행복의 크기 역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혼자 사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독신을 지키면서 사제로 살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즉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이 있기에 사제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혼자 사는 제가 부럽다고 하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습니다. 물론 독신으로 살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도 좋지만, 만약 결혼을 했다면 지금의 자리가 행복하다면서 제게 “신부님, 저희가 부럽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결혼식 주례 서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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