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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27 조회수902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톨릭 상식

"사랑"

1.의의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생기는 하나의 커다란 덕행(德行)이다.

그러기에 이를 애덕(愛德)이라고 하,

이 덕은 하느님과 인간을 완전히

하나로 묶는 덕 중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덕행

사랑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예언자 호세아는 배신한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편(하느님)으로서 여전히

바알 신에게 마음을 돌린 아내

(이스라)를 사랑한다는

()를 들었다(호세 11).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 관계는 창조에서부터 나온다.

창조야말로 사랑을 그 본질로 삼으며,

히브리 사상에서는 무()로부터의

존재는 곧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했다.

구약에 있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의 관계는

대체로 율법 관계를 수반하고 있다.

사랑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더불어 맺은 계약,

 이 계약의 책임과 의무 등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본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아가페(Agape)

에로스(Eros) 사랑이 있다.

에로스는 대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데 비해, 아가페는 대상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리고 에로스는 자기 추구인 데

반하여 아가페는 자기 희생적이며

자기 부정적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율법적인

사랑보다 희생적 사랑(아가페)

 가르쳤다.

2.사랑과 계명

사랑은 첫째 계명이다.

사랑은 모든 계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 없이

이웃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요한 4, 20).

그래서 10계명 중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전반부

1계에서 3계까지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은

후반부 4계에서 10계까지이다.

이 두 계명을 지키지 않고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완덕(完德)

 나아갈 수 없.

모든 율법과 예언서는

바로 이 두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 22, 40)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먼저 그분은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며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마태 19, 17)

그리고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총을 받았으며,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시고 또 사랑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그분께

기쁨을 드리게 되고,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 잘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3.자신의 사랑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요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태 22, 39)

성 아우구스티노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다음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며,

 그 다음에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상을 존경해야 하며,

원수까지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 존경해야 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구원되었고,

(1베드 1, 18-19)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성령의 궁전이 되었고,

(1요한 3, 1; 1고린 6, 19)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마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죄악을

피하고 덕행을 실천하며,

(마태 7, 13-14)

자신을 구원하는 데 있다.

(마태 6, 33)

 또한 육신보다

영신을 더욱 돌보며,

으르지 않고 재물이나

명예만을 위해

살지 않는 데에 있다.

또한 육신과 물질을

잘 사용하는 데에도

있음은 물론이다.

(로마 6, 12-13).

4.이웃 사랑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유는 하느님께서 명하셨고

(마태 22, 39)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희생할 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이며,

이웃은 한 가족,

한 하느님의 자녀,

영원한 행복에 대한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 사랑은

친절만으로 부족하다.

영육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를 애덕이라고 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초자연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

하느님은 원수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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