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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또 한 사람의 탕자임을 깨닫게 될 때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27 조회수829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의 그림이 있다. 거기에는 방탕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 누더기 옷, 다 해진 신발과 상처 난 발바닥은 그가 집을 떠나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그의 머리는 막 태어난 아이의 모습처럼 삭발인데, 이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 준단다. 동생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아들은 어둡게만 처리되어 있다. 그 얼굴에는 시샘과 질투, 그리고 분노가 찼다.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것일 게다.

 

아들을 안은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다. 왼손은 크고 강인한 손으로 세상의 어떤 위험에서도 아들을 보호해 줄 아버지의 손이다. 오른손은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아버지가 다 품지 못한 사랑을 섬세하게 품어 주는 어머니 손이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늙어 버린 아버지의 얼굴 모습이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안도감으로 자비롭고 평온하다. 그러나 한쪽 눈은 집 나간 아들을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눈물로 지샌 거의 실명 상태다. 그렇지만 눈가에는 분노가 아닌 사랑이 가득하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흔히 ‘돌아온 탕자의 비유’란다. 죄를 지은 작은아들을 주인공으로 보는 게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이를 ‘큰아들의 비유’라고도. 이는 작은아들보다 줄곧 아버지의 종으로,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은 큰아들을 주인공으로 여긴단다. 그렇지만 방탕함을 모르는 큰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가 하느님을 제대로 모른다는 메시지도 어쩜 더 중요할 수도.

 

그러나 누가 뭐래도 주인공은 ‘자비로운 아버지’일 게다. 작은아들과 큰아들이 주인공이 아닌, 아들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작은애가 비록 큰 죄를 지었음에도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기꺼이 받아들인 아버지, 또한 큰애가 화가 났을 때에도 ‘얘야,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며 자신과 아들들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인 양 대하는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만이 가장 큰 메시지로 여겨지니까.

 

사실 우리는 때로는 작은아들처럼, 때로는 큰아들마냥 산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 나간 뒤로 하루도 그 자식을 잊지 못하고 떠난 그 길을 끝없이 바라보았으리라. 집 나간 아들을 향한 그리움은 눈물이 되어, 그 흘린 눈물로 눈은 짓눌렀으리라. 저 멀리 길모퉁이를 돌다온 몰골이 달라진 아들을 안고 기쁨에 겨워 춤추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을 다 아시면서도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 죄인이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리신다. 또한 우리의 자그마한 회개도 크게 기뻐하신다. 지금도 그분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

 

반면에 부서지고 깨지고 잘못하고 죄를 짓고, 사순 시기마다 회개한다고 또 애를 쓰지만 매번 같은 죄를 반복하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당신을 찾아가는 우리를 기꺼이 맞아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 시기만이라도 꼭 기억해 보자. 그래서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자. 아버지의 품은 고향의 오솔길처럼 포근하다. 아버지의 집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이다.

 

이 작은아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으며,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큰아들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헤아리시기에 여기에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을 게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늘 우리를 살리고 일으켜 세우신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바르게 안고 가야 하리라. 이것이 그분의 마음, 곧 사랑과 생명의 마음이기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큰아들보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작은아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넘치는 그분 사랑이 그를 깨끗하게 씻어 주기 때문일 게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사순 시기는 참된 회개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또 한 사람의 탕자임을 깨닫게 될 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한없는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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