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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29 조회수1,141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2월 29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k.4,24)
 
제1독서 2열왕 5,1-15ㄷ
복음 루카 4,24ㄴ-30
 
많은 이들이 부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부자로 사는 방법을 두 가지 정도 찾을 수 있지요.

첫째는 더 많은 부를 얻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방법은 우리의 힘으로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우리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근무하시다가 퇴임을 하신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셨기 때문에 바쁘기는 해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부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퇴임 후, 시장 구석의 선술집에서 빈대떡이나 순대 등의 저렴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으로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동네 어르신들에게 안주와 막걸리 대접을 하면 얼마 되지 않는 액수로도 자신이 큰 부자가 된 것 같다고 하십니다.

부자가 되는 것, 생각해보니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하긴 미국의 폴 사이먼스라는 경제 학자는 행복이란 소비(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고 합니다. 행복이 커지기 위해서는 소비가 커지거나 욕망이 작아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소비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욕망을 줄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행복을 가득 누리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세요?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부자보다는 마음의 부자가 되는데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향을 찾아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을 밖 벼랑 끝까지 내몰려 집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기 유다인들이 구원의 길에서 배제되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말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옳게 살지 못하면 당연히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들은 무조건 자기들이 누려야 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찬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떠나가십니다.

우리 역시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자기는 무조건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남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 특히 눈에 보이는 표징만을 요구하는 모습 등을 간직하면서 주님께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만이 누리려는 욕망만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안에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분명히 이런 모습들을 제치고 그 자리를 가로질러 떠나실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권력 속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학문에서 찾고, 또 어떤 사람은 유흥에서 찾는다. 정말로 행복 가까기에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블레즈 파스칼).


어제 저녁에 강의를 했던 수지동천 성바오로성당.

 

기도는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톨스토이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깊은 광산에 파묻힌 사람, 빙하에 갇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 바다 한가운데 홀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 독방에 갇혀 고독 속에 쇠약해진 사람,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기도가 없다면 이런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기도하기 보다는 포기하는 길을 선택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솔직히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보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되뇔 때가 많습니다. 즉, 그냥 생각나는 대로만 기도합니다. 아니면 기도서에 있는 글을 읽음으로 그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내게 필요한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정리되지도 않고 구체화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한 아이가 떼를 쓰면서 울고 있습니다. 엄마는 “왜 우니? 뭐가 문제인데?”라고 묻습니다. 그때 아이가 “몰라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엄마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이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엄마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 지 다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내게 필요한 것이 정확하게 알고 있고 이를 기도한다면 주님께서는 100%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기도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분명합니다.


눈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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