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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1 화/ 옹졸함과 냉정함을 넘어 나누는 자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29 조회수968 추천수9 반대(0) 신고



사순 3주 화, 마태 18,21-35(16.3.1)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The parable of the unforgiving servant





옹졸함과 냉정함을 넘어 나누는 자비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에 우상숭배를 거부하다 불가마에 던져진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서 유배로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에게서 자비를 거두지 말아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다니 3,34-35). 그는 백성들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고, 온 백성이 희생 제물이 되어 온전히 따르게 해달라며 주님께 자비를 청합니다(3,39-40).

오늘 복음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큰 빚을 진 종은 주인에게 다 갚을 때까지 참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노동자가 안식일을 빼고 20여 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빚을 탕감해줍니다(마태 18,27). 그가 청하지도 않았으나 “가엾은 마음이 들어” 탕감해준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자비는 한이 없고 먼저 다가가 헤아려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동료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다 갚으라고 다그쳤고, 동료가 엎드려 갚을 때까지 참아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18,30) 그는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입은 엄청난 자비를 까맣게 잊고 작은 빚을 진 동료를 냉정하고 옹졸하게 대했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이런 냉정함이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자비이십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죄를 짓고 영혼의 어둠 속에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비유의 주인처럼 우리가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감싸주십니다. 죄에 무감각해져 자신이 죄 중에 있는지, 또 얼마나 큰 용서를 받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입니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며 그저 그렇게 무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1독서의 아자르야의 고백처럼 그분의 자비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 땅, 햇빛, 동료 피조물들, 시간과 공간,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 어느 것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느님 찬미는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재물과 권력, 명예, 능력을 지니게 되면 마치 자신이 주인이 된 듯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가 주인이 되어 무엇인가를 베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비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한없는 자비를 전하고 나눌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너그러워서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자신의 잘못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다른 이들의 사소한 잘못에는 냉정하고 엄격한 잣대를 내미는 버릇을 버리고 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살 수 없고, 자비를 나누고 용서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자비와 용서를 나누지 않는 것은 주님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없이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그 자비에 엎드려 감사드리며, 옹졸함과 냉정함을 버리고 따뜻한 자비심으로 서로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18,35)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아자르야의 진실하고 간절한 자비의 기도를 바쳐보시지 않겠습니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telegram.me/ki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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