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1 조회수1,073 추천수13 반대(2)

성지순례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울컥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기도하셨던 광야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골고타 언덕입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집트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저 멀리 보이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묵상하면서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삭막한 광야에는 머물 곳도, 먹을 것도 없듯이, 인생이라는 광야에서도 많은 유혹과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랐습니다. 조용한 성당 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잡한 시장을 걷기도 하였고, 무심한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예루살렘 부인들을 묵상을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십자가를 지면서 키레네 사람 시몬을 묵상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린 베로니카 성녀를 묵상하였습니다. 살면서 너무나 많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서 야유를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살면서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예수님께 조롱과 멸시를 보내곤 했습니다.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었던 베드로 사도처럼 나 역시도 부인하고, 배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오늘도 모든 것을 품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예수님께서는 가브리엘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허물과 잘못을 품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시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 장구벌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어느 날 허물을 벗어버리고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부러워하던 장구벌레들의 이야기입니다. 물속에서 보는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영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물속에 있는 장구벌레들은 물 밖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가 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배들은 물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 밖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 줄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가 되면 반드시 물속으로 돌아와서 알려주리라고 결심한 장구벌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자리가 되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속의 장구벌레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허물을 벗어버리고 하늘을 높이 나는 잠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늘의 세상을 알려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처벌과 제제는 법과 규칙의 문제입니다. 사회는 이와 같은 법과 규칙이 있어야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양심과 내적인 자유의 문제입니다. 처벌과 제제는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거나,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에, 내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손자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한 젊은이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였고, 손자는 그 차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젊은이는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손자를 잃어버린 슬픔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가족들과 함께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젊은이를 찾아가서 용서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용서를 한 후에 가족들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입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라고 합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 하려면 꼭 是非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규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갈등과 아픔이 있다면 그것 까지도 놓아버리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따라서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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