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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 목/ 생명으로 가는 하느님과의 소통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1 조회수1,409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순 3주 목, 루카 11,14-23(16.3.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루카 11,23)



Jesus and Beelzebul





생명으로 가는 하느님과의 소통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시려고 늘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은 삶의 호흡이며 하느님의 창조를 이어가는 길목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소통은 모든 소통의 근원이 되고 출발점이 됩니다.

말씀이신 주님과의 소통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명하신 길만 온전히 걸으면 잘 되리라(예레 7,23)는 말씀에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으로 고집스럽게 굴었습니다(7,24). 그들은 목을 뻣뻣이 세우고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어 진실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게 됩니다(7,26.28).

하느님과 소통하는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귀를 막고 돌 같은 마음으로 완고하게 말씀을 거부해버립니다. 말씀과 자신을 단절시킴으로써 스스로 ‘불통의 존재’, ‘감옥에 수감된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사랑이기에 말씀과의 소통 부재는 곧 죽음일 뿐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마귀 들린 벙어리가 나옵니다. 말을 못하는 상태는 마귀로 인한 것인데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과 무관한 상태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신앙공동체와 사회를 둘러보면 ‘불통의 마귀’가 득실거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 마귀는 온갖 나의 고집스런 자아, 반생명적인 움직임, 탐욕, 주변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 권력 유지에 대한 집착 등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직시해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 곧 성령의 힘으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어 말을 하도록 해주십니다(루카 11,14). 이렇듯 소통을 시작하고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힘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 소통을 가로막은 반생명적이고 사랑과 정의를 거스르는 것들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말씀을 들어 받아들이는 소통을 살아나가는 것이 우리의 길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들처럼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사탄의 하수인으로 격하시켜버리거나, 예수님을 시험하려들지 말아야 합니다(11,15-16).

나아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완고함과 교만은 결국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올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사탄을 섬기는 사람이 아닐까요? 말씀을 거부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지 않고 살아도 문제없고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곧 ‘벙어리 마귀’입니다.

오늘도 하느님 편에 서서, 깨끗하고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치우고, 생명이요 사랑이며 정의이신 주님과 소통하는 복된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telegram.me/ki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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