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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3 조회수865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3월 1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t.18,21-22)
 
 
제1독서 다니 3,25.34-43
복음 마태 18,21-35
 
지난 주말에 좀 피곤하게 보냈습니다. 잠을 설쳐서 몇 시간 자지도 못했고 성지에서의 일과 외부로 나가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어서 많이 피곤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코에 아주 자그마한 뾰루지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뾰루지가 무척 신경 쓰입니다. 약간만 건드려도 통증이 있어서 씻을 때를 포함해서 일상의 삶에서 불편을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약간 붉고 조금 부었다는 것 정도로, 거울을 봐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거울을 보면서 확인할 정도로 코의 뾰루지가 제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문득 지난달 오십견 때문에 어깨 아팠던 것이 떠오릅니다. 어깨 아픈 것에 비교할 때, 이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 어깨가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뾰루지가 더 아픈 것처럼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조금만 과거의 시간을 바라본다면 지금의 상황도 별 것 아닌 생각을 할 수 있는데도, 우리들은 지금이 최고의 어려운 시간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적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며 화를 내고 더 심해지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단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크게 생각해서 주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는 어떨까요? 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겠지만, 조용한 묵상 가운데 하나하나 따져보면 너무나도 많고 큰 사랑과 은혜를 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것은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면서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만 탈렌트라는 빚을 진 사람의 모든 부채를 탕감해주는 임금님이 등장합니다. 탈렌트라는 당시의 화폐 단위를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아서 쉽게 설명 드리면, 1탈렌트는 대략 금 34Kg에 해당합니다. 요즘의 금 시세가 1g에 5만 원 정도 하니까, 엄청난 액수이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해준 것입니다. 어떻겠습니까? 정말로 기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100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둡니다. 1 데나리온은 당시 일일노동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현재로 환산해서 최저임금 6,030원, 그리고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생각하면 약 5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옵니다. 즉, 그는 5백만 원 정도의 빚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적은 액수는 아닙니다. 그런데 금 34만 Kg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액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은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훨씬 적은 액수를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을까요?

너무나 어마아마하기에 자신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갚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아예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극복되니까 현실의 상황만 보입니다. 즉, 자기의 빚은 보이지 않고, 자기에게 빚진 사람이 눈에 보인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받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물,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빛과 잠을 잘 수 있는 어둠, 외롭지 말라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는 교회 등등……. 생각해보니 정말로 많습니다. 어느 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값을 하라고 하신다면 어떨까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냥 포기할 뿐입니다. “알아서 처분하십시오.”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갚을 안 하시겠답니다. 그냥 공짜로 주시겠답니다.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며,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한다면 손해를 끼치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인가요?

너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너보다 강하거나 약했다. 그가 너보다 약했으면 그를 용서하고 그가 너보다 강했으면 너 자신을 용서하라.(세네카)


어제는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함께 저녁기도 바치는 중.

 

내가 버려야 할 마음의 옷

언젠가 책을 읽다가 너무 공감 가는 내용이라 스크랩 해 놓았는데, 어떤 책인지가 기억나지 않네요.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그 부분을 그대로 올려 봅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옷 중에서 벗어버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잘못을 모르고 남에게 자기 잘못을 전가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평가를 부당하다고만 생각한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두꺼운 옷을 벗어야 한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더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남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우울함을 자신에게 쌓아두게 된다.

셋째, 자기중심적인 사고, 이기적인 마음을 벗어버려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멀어서 세상이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왜곡되게 본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마음을 벗고 과감히 그런 것들을 버릴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고 홀가분해지며 행복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물론 가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잠시 머무는 기쁨일 뿐이다.


동창모임을 했던 소성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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