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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3 조회수879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3월 3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Ever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will be laid waste
and house will fall against house.
And if Satan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will his kingdom stand?
For you say that it is by Beelzebul that I drive out demons.
If I, then, drive out demons by Beelzebul,
by whom do your own people drive them out?
(Lk.11,17-19)
 
 
제1독서 예레 7,23-28
복음 루카 11,14-23
 
연예계 기사를 보면 심심찮게 악성댓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연예인들의 기사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여기에 악성댓글을 달아서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실제로 자살하는 연예인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저 역시 이 악성댓글을 무더기로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매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정말로 자신의 일을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더군요.

악성댓글을 다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 불만이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느껴서 악성댓글을 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단순히 재미와 스트레스 풀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행동이 남에게 재미가 아닌 괴로움으로 그리고 스트레스 풀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다는 것은 왜 제대로 보지 못할까요?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성의 글을 올리고는 “아니면 말고” 한다면 만사 오케이일까요?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 안에서는 욕을 섞어가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혹시라도 상처를 받을 지를 생각하면서 돌려 말하거나, 아니면 순화시켜서 말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인터넷 상의 악성댓글은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모두 무시합니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말로 상처를 깔아뭉개는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예수님 시대에 인터넷이 있고, SNS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엄청난 악성댓글을 주님께서는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주님께 대한 시샘과 자기 자신이 최고라는 교만에 빠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쓰지 않았을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벙어리 마귀가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 안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놀라운 일을 했다고 주님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사실 벙어리 마귀는 다른 어떤 마귀들보다 훨씬 기가 세고 고집불통인 마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도 이 마귀를 쫓아낼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도 주님의 전능하심에 이 마귀 역시 힘을 쓸 수가 없어서 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군중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존경을 받던 종교지도자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너무 쉽게 하셨기 때문이지요.

이 모습에 시샘과 교만에 빠진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찬양하기는커녕 정반대쪽으로 주장하면서 주님 힘의 원천이 베엘제불에게 있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단한 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아니 오히려 잘못된 것으로 평가절하 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시샘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가 최고라는 교만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좋은 행동이나 의미 있는 행동들을 무시하려 한다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종교지도자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겸손한 모습을 가지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운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흠만 보는 것은 우리 마음을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다(라로슈푸코).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의 시계탑입니다.

 

나는 명품?

상당한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비싸다고 그 위에 치장을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고 주변에 치장한 것만 부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명품 신발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비싼 신발이기 때문에 보호한다고 그 위에 비닐봉지를 씌워서 신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명품 신발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본질적인 것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치장하고, 나를 뒤덮는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즉 나를 세상에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본질적인 것들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부귀영화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다른 이들을 위하고 또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소위 ‘명품’이라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다른 것들만 부각하고 다른 이들의 본질적인 것들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낮추려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명품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인정받는 명품의 삶인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몇 천 만 원 이상 가는 명품을 샀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명품이 아닌 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명품의 삶을 사신 성모님. 옆 모습을 찍어봤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빠다킹 신부 일정

3/3(목) 11:00 갑곶성지 평일미사

3/3(목) 15:00 갑곶성지 평일미사

3/3(목) 19:30 인천교구 구월1동성당 견진교리 1

3/4(금) 11:00 갑곶성지 평일미사

3/4(금) 15:00 갑곶성지 평일미사

3/4(금) 19:30 인천교구 구월1동성당 견진교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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