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4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6 조회수958 추천수16 반대(0)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만 졸업하면, 군대만 제대하면, 사제가 되면, 본당 신부가 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나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앞으로 이런 일들이 생기면 더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할 때는 언제나 부족하고, 힘들고,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 지금의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이지만, 군에서 생활하지만, 신학생이지만, 보좌신부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이런 생각으로 지내면 지금의 상황이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오늘 흘린 땀이 인생의 거름이 되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혼인을 앞둔 젊은이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결혼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십시오.’ 인물이 좋기 때문에, 직장이 좋기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집안이 좋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은 언제나 충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는 사람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얀 종이 위에 찍힌 검은 점을 보기 보다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여백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들은 인사이동을 통해서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동료사제들 중에는 늘 불평과 불만이 있는 사제도 있습니다. “보좌 신부 때는 본당 주임신부를 잘 못 만나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본당 주임신부가 되어서는 보좌신부를 잘못 만나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보좌신부가 없는 곳에 가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하느라 힘들었다고 합니다. 신자가 적은 본당에 가서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신자가 많은 본당에 가서는 일이 많아서 죽겠다고 합니다.” 동료입장에서 참 안타깝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의 생각을 하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신설 본당에 가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서 좋고, 시골 본당에 가면 모처럼 쉬면서 건강을 돌볼 수 있어서 좋고, 보좌 신부가 열성적이면 일을 맡길 수 있어서 좋고, 보좌 신부가 의욕이 적으면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좋고, 신자들이 많으면 함께 할 일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친구는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삶을 살다 보면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빛을 추구하고 그림자를 멀리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계십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은 여행자들에게 더없는 휴식처가 되고,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봄날에 따뜻하게 비추는 태양의 입김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을 것입니다. 빛은 자기가 빛이라고 자랑하거나 뻐기지 않습니다. 그림자는 자기가 그림자라고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또한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화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이웃과 화해하지 못하면 내가 있는 삶의 자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으로 신음했던 이집트의 노예 생활과 고난의 삶을 살았던 광야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한다면 어느 곳에 있던지, 바로 그곳이 약속의 땅이 될 것이고 용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복음의 큰 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동생과 화해하지 못하였고, 동생을 아버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큰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집마저도 약속의 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비록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의 집에 노예처럼 살며 굶주림에 지쳤지만 하느님과 화해하고, 자신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면서 약속의 땅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살 때 바로 그곳이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시면 이제라도 훌훌 털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십시오. 큰 아들처럼 자신의 지위와 명예가 자신의 능력과 실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시면, 그러한 오만과 교만을 떨쳐버리고 겸손의 옷을 입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사순절을 보다 뜻있게 보낼 수 있고 우리 모두는 새로운 삶, 부활의 삶에로 초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