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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회개하면 십자가가 달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6 조회수1,099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사순 제4주일


< 그러니 기쁘고 즐거워해야 한다 
>


  
복음: 루카 5,1-32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회개하면 십자가가 달다 >

 

요즘 평화방송에서 하는 강길웅 신부님의 강의를 즐겨듣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들은 강의에서 강 신부님은 자신이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던 어렸을 때의 가정형편을 지금은 감사하게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한 작은 아들의 비유를 묵상하는 오늘 참으로 좋은 사례라 생각이 들어 소개합니다.

 

강 신부님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귀엽고 똑똑한 여동생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첫 돌이 될 무렵 동생을 업고 있었는데 등에서 기계 울림과 같은 것을 느꼈고 아기를 내려 보니 경련을 하고 있더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간질병인 것 같습니다. 온 몸이 비틀어지고 눈이 돌아가고 거품을 뿜고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은 매일 반복되어 나타났고 세상에 부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20년은 매일 경련을 일으키며, 또 나머지 20년은 침상에서만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사제가 되고 싶던 강 신부님은 그 동생 때문에 지게 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12년 동안 섬마을에서 선생님을 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사제가 되어서 강 신부님은 그렇게도 원하던 소록도의 나환우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여 집에서 밥도 먹고 소주 한 잔도 하며 매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분들은 매우 민감하여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거북하게 느끼면 마음을 닫아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엔 사제들이 와서 물 한 컵도 마시지 않았었는데, 강 신부님은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강 신부님은 너무 오래 있으면 자신을 돌아볼 수 없을까봐 10년이 지나면 2년 정도 다른 곳에서 사목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주교님께 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발령을 내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교님에게 왜 발령을 안 내주시느냐고 물었더니 소록도로 들어갈 사제가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제가 250명이 넘는데 어째서 보낼 사람이 없느냐고 했더니, 아무도 그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 생활을 원할 것이라고 여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그런 나환우들을 어려워하지 않고 편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돌보는데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좋은 일에 쓰시기 위해 미리부터 연습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또 그분에게 큰 십자가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목소리가 크신 분이었고 히스테리가 심하셨다고 합니다. 온 가족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그 어머니를 지금은 극진히 봉양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켰기 때문에 지금도 밥하고 빨래는 당신이 하실 수 있고 그래서 사제관이 없는 곳에 발령을 받아도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어머니의 그 미묘한 심성을 이어받아 음식에 간을 맞추듯 사람의 감성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잘 만질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심성이 곱지 않은 분들도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사제로서 꼭 필요한 능력들인데 하느님은 그런 어머니를 통해 미리부터 준비시켰던 것이고, 신부님은 다시 태어나도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때는 거부하고 싶었던 십자가가 참으로 가장 달콤한 선물로 보이게 된 이유는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쌉싸름하고 달콤한 맛을 깨달으면 이젠 세상의 지나치게 달고 결국엔 흙을 씹는 것과 같은 결말을 주는 음식들은 쳐다보기도 싫어집니다. 이것이 성인들이 왜 일부러 단식하고 멸시를 받으려하고 고통을 청하는지 설명해줍니다.

오늘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처음에는 매우 거북하게 느꼈었지만 지금은 종으로 그분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반면 회개를 하지 않은 형은 아직도 아버지에게 자신이 고생하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일꾼이란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집에 거하도록 우리를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해 불러주셨는데도 얼마나 여전히 이 세상 다 사라져버릴 보상을 청하고 있습니까? 회개하면 오직 감사하여 무엇을 더 해 드릴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무거운 십자가를 청할 뿐이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강길웅 신부님이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그럴 거면 집 나가!’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런 말을 두려워합니다. 아이가 집 나가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 맘에 들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만 합니다. 자녀가 아플 때 어머니는 건강한 자녀보다 아픈 자녀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되어있습니다. 그때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다가는 화를 부르기 일쑤입니다. 강길웅 신부님은 부모의 맘에 드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픈 동생을 잘 돌보는 일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알아 그 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집에 살고 싶다면 그 집 주인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맘에 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병들고 아픈 이들인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해 구원으로 이끄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복음전파에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죄인들이 회개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시는데도 여전히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맏이의 처지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죄인들이 회개할 때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신다면 우리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그 모습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의 모습입니다.

 

저도 작은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더 이상 그분께 무엇을 청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미래도 포기하고 결혼하는 것도 포기하였으니 마땅한 기쁨과 행복과 명예를 줄 것을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보상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고 나를 위해 아드님까지 죽이셨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더 이상 무엇도 청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분 앞에서 무엇을 청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목숨을 걸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왜 보따리는 안 건져왔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면 아버지가 모든 것을 주었는데 아직도 염소를 내 놓으라고 하는 맏이와 같습니다. 물론 작은 아들이 유산을 달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개는 결심과는 다릅니다. 결심은 바리사이들이 하는 것입니다. 주일미사에 열심히 나가겠다는 결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사에 빠지는 사람을 판단합니다. 또 미사에 나온 값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은 그저 종으로라도 쓰이는 것에 감사하고 하느님의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불만이 있을 수 없고 무조건 주님의 집에 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 것을 다 잃어도 기쁩니다. 그리고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이 이미 정찰대가 가져온 포도를 맛보았을 때처럼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오직 회개하여 그 기쁨 안으로 들어가기만을 청합니다. 원하고 믿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겸손하게 만듭니다. 먼저 겸손할 마음을 지니면 회개로 이끌어주십니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몸을 조금 괴롭힐 필요가 있습니다. 배고프고 아프면 자아도 약해져 겸손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어 회개할 준비가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나면 그 맛을 알아 더 멸시와 고통을 청하게 됩니다. 그 쓰기만 하던 십자가가 달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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