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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는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7 조회수753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왕실 관리는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요한 4,48-51 참조)’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에서 환대를 받으신다. 그들이 축제 기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과 이적을 보았기에. 그렇지만 열렬한 마음과 호기심에 가득 찼지만, 그리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나에서 만난 왕실 관리는 달랐다. 그는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려는 간절함과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끝까지 겸손과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자기 아들이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그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예수님의 표징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왕실 관리는 겸손했다. 그러기에 예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내가 누군데!’ 했더라면 나타나지도 않았을 게다. 우리는 어떠한지? ‘나를 이렇게 대접하다니!’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건가?’ 늘 이러한 유혹에 부딪치며 산다. 그렇다. 그건 분명히 큰 유혹이다. 그것도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혼자만의 오해일 수도. 은총은 ‘잊어버리고 베풀 때’ 시작된다. 사람은 잊어버리지만 주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기에. 그분께서는 작은 선행이라도 기억하셨다가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인정받고 싶을 때에는 더더욱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은총의 이끄심을 꼭 만나리라.

 

우리가 가장 많이 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일 게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면 막연해진단다. 사랑에 대한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왔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곧 생각 ‘사’(思)에 헤아릴 ‘량’(量)을 써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풀이가 가까워 보인다. 예수님의 이런 기적은 ‘사랑’에서 나오리라. 도움이 필요한 이의 처지를 생각하고 헤아리는 연민의 마음에서 기적의 능력이 나오는 것일 게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은 믿는 이의 청에 의하리라. 그 사랑의 은총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믿음의 크기만큼 누릴 게다. 그러기에 믿음은 그분 사랑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그릇이 크게 비어 있을수록 그분 사랑의 은총이 더 쉽게 작용하리라.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오히려 자신을 비우는 게 이치이다. 그래야 그분 사랑이 들어오기에.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찰떡같이 굳게 믿어야만 한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왕실 관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의심 없이 떠난다. 믿음은 사람을 단순하게 한다. 따지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이렇게 축복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그는 자기 아들이 살아난 것을 알았다. 왕실 관리는 살아난 아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가족 모두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나. 그분께서 지니셨던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인 것이다.

 

곧 그의 깊은 믿음에서 나온 겸손된 기도가 예수님을 움직이시게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겸손하게 바치는 기도만이 주님을 움직이시게 할 게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고 겸손이 담긴 기도를 그분께 드리고 있을까? 신앙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열렬함이나 호기심과 같은 표면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하느님을 이기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예수님의 은총을 누리도록 아들을 살린 왕실 관리처럼 간절함과 굳은 믿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드리자.

 

죽어 가는 한 아이를 살리신 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새 하늘, 새 땅이 싹트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이는 미래의 약속이 아닌, 현재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약속은 이미 성취되며 그 성취는 오고 있다. 지금 병든 아이를 살리신 예수님께서는 장차 죽은 라자로를 살아나게 하실 것이고, 당신 자신도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실 것이며, 아울러 당신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꼭 주실 것이다. 표징은 신앙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믿는 이들은 이미 구원될 생명을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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