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교황님 매일미사묵상]"구원은 작은 것에서 온다-Santa Marta 미사"[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07 조회수855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anta Marta 매일미사묵상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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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 열왕기 하권 말씀 5,1-15ㄷ


화답송 : 시편 42(41),2.3; 43(42),3.4(◎ 42〔41〕,3)


복음: 루카 복음  4,24ㄴ-30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7143&gomonth=2016-02-29&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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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르타 미사 – 구원은 작은 것에서 온다.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salvation-comes-from-little-th 


2016-02-29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L’Osservatore Romano) 


하느님의 구원은 대단한 것들, 권력이나 돈이나 성직자 네트워크나 정치 네트워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업신여김을 받는 작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29일 월요일 아침에 산타 마르타 미사에서 이러한 묵상을 주었습니다.  


“교회는 부활절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며 오늘 우리가 구원에 대해 묵상하도록 합니다. 즉, 우리는 구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열왕기 하권(5,1-15)에 나오는 “나아만의 병”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의 사실 그리고 그 후?”를 보여 줍니다. “병이 있을 때 그것은 언제나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러나, 교황이 묻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구원에 이르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한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계시는 어떤 것입니까?”  


교황의 관점에서 “오늘 교회가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업신여김(disdain)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에 도착해 낫게 해 주시기를 청했을 때 엘리사는 신부름꾼을 보내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아만은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이토록 많은 선물들을 들고 이런 여정을 떠나 왔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강에서 단지 씻기만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냐. 더 나아가 나아만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강이 이 곳의 강보다 더 아름답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루카복음(4,24-30)의 말씀에 관해서 설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자의 독서 말씀을 봉독하시고 예수님께서 해방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해방되어 나가는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시자 나자렛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오? 그는 우리 가운에 한 사람이오, 우리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는 것을 보았소, 그는 배운 것도 없소.” 그리하여 사람들은 “업신여겼고”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다시 교황은 말을 이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는 이 업신여김을 윤리적인 궤변을 추구하는지도자들, 율법학자들 의사들에게서 느꼈습니다. “이것은 이런 점에서 성립될 수 있고, 저런 점에서 성립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계명들을 그들이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이것이 사람들이 그들을 믿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사두가이 사람들은 황제와 함께 세상의 권력자들과의 타협으로 구원을 추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성직자 네트워크, 그리고 또 다른 때는 정치적인 네티워크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구원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을 갖고 있었으니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분께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이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업신여길까요?” 교황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구원은 위대한 어떤 것, 위엄 있는 어떤 것에서 와야만 합니다. 권력자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강하고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업신여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이 오로지 작은 것들, 하느님 일들의 소박함에서 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실 때 그분께서는 결코 위대한 것들이 아닌 오직 “작은 것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참행복의 복음을 다시 읽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이것은 복음의 두 가지 기둥입니다. “오라. 네가 이렇게 했으니 나와 함께 오라.” 그것은 “소박한 것들을 포함합니다. 즉, 너는 권력과 네트워크와 타협에서 구원과 희망을 찾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 너는 소박하게 이렇게 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많은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이 제안했습니다. 교황 자신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참행복과 마태오 복음 25장을 읽을 것, 그리고 이처럼 어떤 일을 내가 업신여기고 있는지, 이러한 일들이 나한테서 평화를 앗아가는지를 생각하고 살펴보기.” 왜냐하면 “업신여기는 것은 오로지 허염심을 가진 자들, 교만한 자들만이 자기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참행복의 끝에서 예수님께서는 힘있는 어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놀라지  않는 사람, 이것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 업신여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들의 이치들을 북상하면서 교황은 되풀이 해서 말했습니다. “오늘과 내일 약간의 시간을 내서 참행복의 복음을 읽고 그리고 마태오 복음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약간의 시간을 내서 업신여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 있는 우리 마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십자가의 어리석음, 즉, 하느님 아드님의 멸하심, 작아지심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간구합시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작은 것들은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음으로써 그리고 나자렛의 작은 마을에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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