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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11 금/ 신앙인의 정체성과 소명의식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10 조회수1,273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순 4주 금, 요한 7,1-2.10.25-30(16.3.11)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요한 7,30)



Jesus teaching in the temple





신앙인의 정체성과 소명의식


오늘복음은 요한복음 제2부의 시작부분으로서 예수님의 수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를 알아차리시고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치 않으셨기에(7,1) 갈릴래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초막절 축제를 맞아 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가 사람들이 수군댈 정도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7,28-29)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살의로 가득한 유다인들 앞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심을 선언하시며(7,10. 28) 그로 인하여 닥쳐올 죽음을 준비하십니다. 곧 자신을 박해하며 죽이려하는 유다인들의 음모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걷도록 이끈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파견되었다는 확고한 정체성과 아버지의 뜻인 인류 구원을 향한 투철한 소명의식이었습니다.

먼저 내가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살도록 불린 사람이라는 뚜렷한 인식이 없다면 무엇을 하든 자기 사업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처럼 눈이 멀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참함에 떨어지지 말아야겠지요.

다음으로 예수님처럼 투철한 소명의식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일이나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가장 의미 있는 삶으로 초대받았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철저히 실행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주님의 자비와 선, 정의와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려 할 때마다 “옳지 못한 생각으로”(지혜 2,1) 의인들을 질투하며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제아무리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세상의 유혹이 나를 끈질기게 뒤흔들려 해도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적대자들의 박해와 음모 속에서도 목숨 바쳐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기셨던 예수님과 같은 투철한 소명의식을 지녔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telegram.me/ki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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