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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그리스도에 의해 붙잡혔다! (2)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16 조회수1,56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313/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나는 그리스도에 의해 붙잡혔다! (2) (필리3,12-14)

 

<이 글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1) 에 이은 글임>

 

바오로는 여기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주장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음이 명백하다! 1코린2,6절과 4,8절에 의하면 이들은 그들이 이미 목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완전한 사람들이라고, 곧 온전히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대하여 바오로는 자신의 목표인 그리스도를 앎그를 얻음그 안에서 발견됨”, 곧 그는 구원을 온전히 얻음을 위해서 매진하고 있을 따름이지 그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이들 잘못된 완전주의자들을 경계하고 있다.

 

필리3,12절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에 의해 붙잡혔으므로 나도 붙잡을 수 있도록 매진할 따름이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붙잡다”(katalambanein)라는 말은 영어의 “grasp"파악하다, 손아귀에 쥐다, 터득하다, 붙잡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오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붙잡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다마스쿠스 도상에서의 주님을 만난 체험을 두고 하는 말이다(사도9,1-19). 다시 말하면 그는 그때 그리스도에 의해서 체포되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그의 사도로 징집되었는데, 그것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 대상이 된 사건, 곧 그분으로부터 선택받아 그의 사랑의 대상이 된 사건이었다(1코린13,12).

 

이 사건이 그의 구원의 시작이요 동시에 사도로서의 사역의 시작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에게 붙잡는 은총을 베풀었으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붙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붙잡음(얻음), 곧 그를 온전히 앎과 그의 완전한 구원은 아직 미래적이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자신이 그것을 위해 아직 매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미리 은총을 베풀어 그를 붙잡았으므로, 그는 그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를 붙잡으려매진하는 것이다!

 

앞의 11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곧 그의 죽음과 같은 모습이 되는 자신의 현재적 삶을 통해 내가 가능하면 어떻게(ei pos)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얻을 수 있기를바란다고 표현한 바오로는, 여기 12절에서도 비슷하게 그리스도를 가능하면(ei) 붙잡으려매진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가능하면이란 표현을 여기 덧붙이는 이유는 이미 구원의 완성에 도달했다고 믿거나 구원의 완성을 보장받았다고 자만하는 소위 잘못된 완전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변증하기 위해서이다.

 

곧 우리는 하느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실 하느님의 구원의 완성에 대해 자만심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의 태도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매진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성령이 증거 하는 구원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신실히 지키셔서 종말에 구원의 완성을 주시리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로마8,28-39).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을 따 논 당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종말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그것에 대한 두렵고 떨림의 자세가 논리적 긴장을 이루면서 함께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건전한 것이다! 우리는 거듭날 때 죄들을 구속받고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살리시고 그곳에 거하시지만, 우리가 영을 떠날 때는 우리의 옛 사람의 본성 안에 있게 된다.

 

우리 옛 사람의 본성은 죄인이므로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 곧 우리의 혼이 처리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일생동안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짐과 성령의 역사와 체험으로만 처리되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혼의 처리와 변화가 바로 성화의 길이다!

    

필리3,13-14절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원문 상 이 두 구절을 다시 번역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형제들이여! 나는 내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를 완전히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해서 나의 몸을 앞으로 빼며 푯대를 좇아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이 위로 부르시는 상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바오로는 자신의 믿음의 삶을 단거리 육상선수가 자기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두 눈은 저 멀리에 놓여 있는 푯대에 집중하여 전력으로 달리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단거리 육상선수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것이다! 바오로가 잊어버리고자 하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자신이 과거 전도유망한 바리사이 유다인으로서 성취한 것들과 교회의 핍박자로서의 저지른 죄를 모두 포함한다. 그가 자신의 과거의 성취에 연연한다면 그는 자만하고 진리를 놓쳐서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는 경주에 매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과거의 실패나 죄에 대한 애석함과 죄책감에 짓눌려 있어도 영혼이 병들고 믿음이 뒤틀려 건전한 성화의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바오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지금까지의 죄들은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으로 사함을 받았지만, 옛 사람의 본성인 죄는 우리의 일생동안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의 혼이 변화되는 것이며 이는 성령의 역사이다!

<구속과 구원과 완전한 구원, 법리적 구속과 유기적 구원, 객관적, 주관적 구원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매일말씀묵상을 참고하시기를!>

 

바오로는 2코린5,16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욕하고 교회를 핍박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육신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했을 때의 과오이나, 다마스쿠스 도상의 계시에서 예수가 참 메시아인 것을 알고부터는 그를 더 이상 그런 육신적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오로는 원래 유다교의 관점에서 메시아는 다윗왕조를 재건하여 유다인들에게 자유와 정의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분이라고 생각했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예수를 보았을 때 그가 메시아일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욕하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실재를 체험함으로써, 그가 바로 참 메시아요 만유의 심을 체험하고는, 유다교의 메시아사상은 육신적이해에 불과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참 메시아적 사역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2코린5,14-15절에 그가 그때 얻은 메시아적 사역에 대한 참된 이해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코린5,18-20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욕하고 그분의 교회를 핍박한 죄들을 용서하시고 자신을 새 창조물이 되게 하신 것에 더하여, 바오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셔서 죄인들을 하느님께 화해시키는 화해의 사역을 위임하셨으며, 그것을 위해 화해와 화목의 말씀을 자신에게 위임하셨다고 말한다.

이렇게 바오로는 교회를 핍박한 자신의 큰 죄를 생각할 때마다 그 죄책감에 짓눌려 무기력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총을 기억하여 그 죄책감으로부터 해방감을 새롭게 느끼며 하느님의 소명을 위해 더욱 헌신한 것이다(1코린15,8-10; 2코린5,11-21; 필리3,13-14).

 

바오로의 이 모범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으며,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도 우리는 우리의 죄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받아 주셨는데도 여전히 스스로의 연약함을 용인할 수가 없어서 열등감과 죄책감에 빠지고 그것을 거짓된 자기표현으로 감추려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콤플렉스를 가진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불행하며, 그들의 성격이나 기질들이 교회와 성도들과의 교제나 인간관계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의 혼, 곧 무의식에 숨겨져 있다가 비슷한 충격을 경험할 때마다 그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굴절된 생각과 상처투성이의 감정과 연약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용서의 복음을 듣고 믿음의 길을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죄책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진실한 성화의 길을 가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뒤틀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본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짙은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바라보는 의식이 병든 사람들이다. 성령을 체험함으로써만이 이를 치유할 수 있다! 바로 병든 혼이 변화되는 것이 구원이다!

 

믿는 이들의 믿음의 상황이 이러하니, 그리스도의 은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론과 같은 이단 사설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간에 널리 퍼져 그들 중 상당수를 사탄이 만들어 놓은 죄책감과 공포심의 지옥 속에서 떨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단 사설에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용서와 새 창조의 복음에 귀 기울려 그리스도가 주시는 자유와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2코린5,17절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창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우리도 바오로와 같이 뒤에 있는 것들또는 지나간 옛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새 창조물이 된 자들로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곧 우리는 그분을 믿고 영이 거듭났을 때 그분의 보혈로 죄들을 용서받았다. 새 창조물이 되었으나 여전히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옛 사람의 본성은 죄이다! 완전한 구원은 이 본성인 죄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다!

 

이 혼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혼의 변화를 기질적 구원 또는 유기적 구원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다하여 도달하는 푯대는 이미 이룬 법리적 구속과 지금 계속 중인 혼의 변화, 곧 유기적 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점이다! <이 부분의 이해를 위해서는 '법리적 구속과 유기적 구원을 참고 하시기를!>

알렐루야!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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