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1 조회수1,05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3월 20일 수님 수난 성지 주일
 
They continued their shouting,
Crucify him! Crucify him!?

 

 

제1독서 이사 50,4-7

제2독서 필리 2,6-11

복음 루카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22,14─23,56ㄱ

 

누군가 인생은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해하지 못할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운전을 해서 밖에 나갔다 올 일이 생겼습니다. 혹시 몰라서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교통체증이 너무나 심한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이 시간에 도로로 나온 다른 차 탓일까요? 아니면 교통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통경찰의 탓일까요? 이것도 아니라면 교통법규를 정확하게 지켜서 운전하는 사람들의 탓일까요?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차가 많이 몰리는 시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려니 생각할 뿐입니다.

세상의 삶도 이런데 하물며 주님의 일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자기를 낮춰서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큰 회사의 사장님께서 수출 물량이 너무 넘쳐서 다른 회사에 하청을 줘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급해서 작업복을 입고서 직접 하청을 줄 업체를 방문했지요. 그런데 첫 번째로 방문한 회사에서는 수위실에서부터 퇴짜를 맞은 것입니다. 아무리 자초지종을 말해도 허름한 작업 복장을 보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공장장이 거절합니다. 사장을 만나겠다고 하니 지금 자리에 안 계시다면서 문전박대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회사를 찾아갑니다. 이 회사는 앞선 두 회사와는 달리 모두가 친절합니다. 수위가 얼른 담당자에게 연결해주었고, 담당자는 친절하게 사장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사장 역시 겸손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회사에 하청을 주었을까요? 당연히 친절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회사겠지요.

오늘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흔들면서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며칠 뒤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고 소리를 치면서 예수님을 향해 침을 뱉고 뺨을 때리면서 모욕을 드립니다. 어쩌면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180도 바뀔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즉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이런 모습을 보였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모든 것이 만족된 상태에서는 주님이 너무나 좋습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또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렵고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주님을 원망하고 멀리합니다. 주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세상 삶이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주님의 뜻 역시 이해하기는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다고 세상 삶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따르는 일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하면서 멀리할까요? 이해하기 힘들어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면서 어떻게든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예수님 수난의 시간에 반대하는 자의 모습이 아닌, 함께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새하얀 향기가 나는 꽃길을 그냥 지나치기엔 우리 삶이 너무나 향기롭지 않은가(최상만).


오늘부터 성주간의 시작입니다.


발밑의 행복(틱낫한)

행복이 찾아오는 길은 여러 갈래요
그 표정 또한 천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조건과 한계를 붙여 가며
행복을 고르고 있다.
그래서 설령 행복이 곁에 다가오더라도
결코 그 행복을 눈치채지 못한다.
네모라는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지금 곁에 다가와 있는 동그란 행복의 미소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그대의 삶에 힘을 갖고 싶다면
지금 발밑에 떨어져 있는 그 행복부터 주워 담아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틱낫한 스님의 글입니다. 내게 다가온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멀리에 있는 잘 보이지 않는 행복을 가지려고 하기 보다는, 발밑에 떨어져 있는 행복을 주워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개를 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겸손의 모습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자기 발밑에 떨어진 행복을 쉽게 보고 쉽게 주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에 쓰신 가시관의 가시나무. 엄청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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