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1 조회수2,519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6년 3월 21일 성주간 월요일

 

?

?Mary took a liter of costly perfumed oil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the oil.
and anointed the feet of Jesusdried them with her hair;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the oil. ?

?(Jn.12,3)

?

 

제1독서 이사 42,1-7
복음 요한 12,1-11?

 

저는 제 동창신부에게 운전을 배웠습니다. 운전을 가르쳐주면서 중요한 것은 방어운전이랍니다. 전방주시, 양보운전, 정속주행도 중요하지만 다른 차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면서 운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당시에는 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내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서 운전을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더군요. 자기가 아무리 잘 운전을 해도 다른 차의 잘못으로 사고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15년 넘게 운전하면서 많이 겪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운전을 해서 가고 있는데 옆 차선의 차가 좌측 신호를 켜지도 않고 갑자기 끼어들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얼른 브레이크를 밟아서 사고는 없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안전운전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들을 바라보면서 운전을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나만 잘한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특히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나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로부터 아픔과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그 아픔과 상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 그들이 행하고 있는 말과 행동의 의미 역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수건이 아닌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행동을 그대로 놔두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된 사랑을 따라 당신 역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려고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가만히 나누셨던 것이지요.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런데 이를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으로 평가했던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는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육체노동자의 삼백일치 품삯)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자신이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면서 받았던 것은 겨우 은전 삼십 냥이었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보다도 향유를 더 값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뜻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서 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가 보여 주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 하느님을 세상에 넘기는 지울 수 없는 죄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운전할 때에 다른 차에도 신경을 써야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내 이웃들에 대해서도 신경 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우리 역시 따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한다(강유의).


라자로를 살리셨던 베타니아 성당의 벽화.


많은 기름이 많은 죄를 덮다(시리아인 에프렘 ‘동정찬가’)

죄인들이 거래하는 기름, 많기도 하네.
그 거래는 죄의 용서.
기름부음받으신 분께서 [당신] 발에 기름 부은 죄인의 죄를 기름으로 용서하셨다.
마리아는 [기름]으로 자신의 죄를 자기 죄를 용서하실 주님의 머리에 쏟아부었네.
그 기름은 향내를 풍기며 식탁에 앉은 자를 화로처럼 시험하고
가난한 이들을 아끼는 척하는 자의 도둑질을 드러냈네.
그 기름부음은 마리아의 영광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그녀를 기억하게 하였네.
그 흘러내림 안에 기쁨이 감추어져 있으니 실로 기름은 얼굴을 웃음 짓게 하네.
그것은 모든 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모든 짐을 짊어지네.
이는 기름이 기쁨을 섬기며 슬픔을 복종하게 하기 때문.
그것 때문에 삶을 즐거워하는 얼굴들은 빛나고 죽음의 어두운 얼굴은 그것과 함께
죽음을 맞고 묻힐 준비가 된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 기름을 부어드리고 있을까요? 주님보다는 스스로에게 기름을 붓는데 온갖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주 멋진 카페에 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