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그리스도를 본받아! (필리2,6-11)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1 조회수1,431 추천수0 반대(0) 신고

????????

??2016320/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필리2,6-11)

 

 

필리2,5절에서 바오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권면한 다음, 바로 오늘 분문2,6-11절에서 필리피 교인들이 닮아야 할 예수님의 삶의 자세를 소개한다. 그런 다음 필리3,4-16절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삶의 자세를 소개한 다음, 3,17절에서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라고 권면한다.

 

오늘 본문의 근저에는 필리피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성도들 간에, 특별히 교회지도자 간에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무시함으로 인해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오로가 거듭거듭 똑같은 생각, 동일한 사랑, 같은 마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서 분명하다!

 

곧 이 갈등의 근저에 필리피 교인들의 겸손과 순종과 자기희생의 결여가 놓여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필리2,6-11에서 한편으로는 필리피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제를 더 깊이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필리피 교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필리2,6-7절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느님의 형체 안에 있는 본체시나, 하느님과 동등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셨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서 형체(morphe)”는 신격의 본질과 본성과 동일시되는 말로서, 그분의 본질과 본성을 표현한다. 곧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격을 가리킨다!

 

본체는 태초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님이 영원 전부터 이미 존재하심을 나타낸다. 하느님과 동등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말은 주님은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이 동등함을 귀하게 취하거나 보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하느님의 형체를 내려놓고,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의 본성을 내려놓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성육신에서 그분의 거룩한 본성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체의 외적 표현만이 종의 형체가 된 것이다! 이것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신분의 변화였다. 되셨다라는 단어는 새로운 신분 안으로 들어갔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셨다는 것은 그분의 인성의 외적 표현을 의미한다. 곧 그분은 밖으로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지만, 안으로는 신성의 실제를 가지셨다! 하느님의 형체란 그리스도의 신성의 내적 실제를 암시하는 반면, 모양이란 인성의 외적 표현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본질과 본성을 유지하면서, 또한 사람이셨다. 성육신에서 그는 온전히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사람이셨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하느님이셨다(요한1,14).

 

2,8절은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모습이라는 단어는 밖의 외양이나 외관을 말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을 낮추셨다. 먼저 그분은 그분의 신성의 외적 표현인 형체를 내려놓고, 사람의 모양이 되심으로 자신을 비우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그분 자신을 낮추셨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표현을 가진 하느님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었지만 그분은 이러한 동등함을 내려놓고 사람의 모양을 취하심으로 자신을 비우셨다! 이것은 바로 그분이 성육신을 통해서 사람이 되셨음을 지적한다. 그런 후 사람의 외형으로 발견됨으로써 그분은 자신을 낮추셨다.

 

이것은 그분이 사람이셨을 때 아버지의 뜻 이외에는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 그분 자신을 낮추셨다. 이것이 우리의 본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낮추심의 정점이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였다(신명21,22-23). 그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다(히브12,2).

 

이 구절들에서 제시된 본이신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시다! 이 생명은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이다. 자신을 비우시고, 노예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이 되시고,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까지 순종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의 여러 방면들이다. 곧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을 그분은 온전하고도 절대적으로 살아내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외적인 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부활 생명이시다! 이 내적인 생명이신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체험케 하며, 그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을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한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 안에는 헛된 영광이나 자신을 높임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거기에는 자신을 비움과 자신을 낮춤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살 때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러한 생명을 산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 때,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의 본()인 그리스도를 산다는 의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비우게 될 것이고 자신을 낮추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 안에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이 본()인 그리스도를 따를 수가 없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생명만이 그와 같은 본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뛰어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생명으로 돌이켜야만 한다!

 

체험적으로 그 본이 우리의 내적인 생명이 될 때, 그 본()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헛된 영광으로부터 구원된다!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오로는 그가 다른 이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는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바오로의 관심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본으로 삼고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을 사느냐 살지 않느냐에 있었다! 이것이 바오로의 마음의 갈망이었고 오직 이것만이 바오로의 기쁨을 충만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2,9절은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극히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극도로 낮추셨지만 하느님은 그분을 가장 높은 정점까지 높이셨다. 이 구절에서 언급하는 이름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하느님은 참 사람인 예수를 높여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다!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바오로는 다소의 사울이었을 때, 그는 대제사장(수석사제)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묶어 가둘 권한을 부여받았었다(사도9). 오늘날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제한과 반대를 당하고 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마리아와 성인들과 천사들의 이름으로 대체되고 제한 당하고 있다! 하느님의 지극히 높이심에 의해서 우리 주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다! 주님의 이름보다 더 높은 이름은 없다! 우주 가운데서 가장 높은 이름, 가장 위대한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이다!

 

2,10-11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이름이란 주 예수의 인격과 그분의 역사 안에 있는 총체의 표현이다. “이름 앞에라는 말씀은 주님의 모든 것의 대한 영역과 요소 안에라는 의미이다.

 

하늘에 있는 자는 천사들이요, 땅에 있는 자들은 사람들이요, 땅 아래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날이 오면 모든 곳에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라 시인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라 시인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로마10,9-10, 12-13). 사람이신 주 예수님이 하느님에 의해 승천 안에서 가 되셨다(사도2,36). 그러므로 모든 입이 오직 그를 로 시인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인(是認)이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라 시인하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으로 결과를 맺는다! 이것은 그분의 인격과 역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리스도의 행하신 것의 위대한 결과이다(1코린15,24-28).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타당하다!

 

그러므로 2,5절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근거, , 모범, 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도 또한 스스로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남을 위하여 살 수 있어야 한다(2,4). 오늘날 교회 안의 이단과 갈등과 말씀의 왜곡으로 일그러진 모든 악한 것들이 오늘 본문에서 권면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음으로써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시기를!>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