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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성지 주일 미사 강론-프란치스코 교황"(2016년 3월 30일 성지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4 조회수1,332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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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6320일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50,4-7

화답송 : 시편 22(21),8-9.17-18.19-20.23-24(◎ 2)

2독서 : 필리피서 2,6-11

복음: 루카 복음 22,14─23,56<또는 23,1-49>.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7192&gomonth=2016-03-20&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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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 성지 주일 미사 강론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homily-for-mass-of-palm-sunday

 

2016-03-20 바티칸 라디오 (Vatican Radio)

(전략)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6년 성지 주일 강론 전문이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성지 주일

2016 3 20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루카 복음 19, 38 참조), 예루살렘 군중들은 예수님을 맞이할 때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열정을 느꼈습니다. 우리 올리브 나무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우리는 찬미와 기쁨,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모습 그대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도시에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들어 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분께서 당나귀를 타시고 복음에서 하시는 그대로  그분께서는 또한 겸손하게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오십니다. 그분의 신성한 사랑의 힘을 통해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성부와 화해시키시며 우리 자신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군중들의 사랑을 기뻐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그분께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을 조용히 하게 해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복음19, 40) 주님이 입성하실 때에 그 무엇도 그들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와 머물고 평화를 가져오는 우리의 기쁨, 진정한 기쁨의 원천을 그분 안에서 찾는 것을 그 무엇도 가로막지 못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죄와 죽음과 공포와 슬픔의 덫에서 우리를 구하시는 분은 예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전례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기양양한 입성이나 권세 있는 기적들을 써서 우리를 구하시지 않았다고 가르칩니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주님 구속의 길을 두 개의 동사로 축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셨고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필리피서 2,7-8). 이 두 개의 동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무한하심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에서 우리 죄인들과 연대를 이루시려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피서 2,7) 우리 안에서 사셨습니다. 왕이나 왕자가 아닌 종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성주간이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그분께서 겪으신 치욕의 심연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끝 없는”(요한 복음 13,1) 이 사랑의 첫 번째 표시는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시자 스승님” (요한 복음 13,14)이신 분께서 오로지 종들만이 그렇게 했듯이 제자들의 발 아래 몸을 굽히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분 사랑, 우리에게 몸을 굽히시는 그 사랑이 우리가 우리에게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본을 보이시며 가르쳐 주십니다. ,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그분의 사랑이 되게 하지 않고서는 어떤 작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놀라우신 자애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랑이 구체적인 섬김 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떤 작은 일도,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시는 치욕은 그분의 수난에서 극도에 달합니다. 그분께서는 은돈 서른 닢에 팔리시고 그분께서 택하시어 친구라고 부르신 제자의 키스로 배반을 당하십니다. 거의 모든 다른 이들은 도망가 그분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대사제의 집 안뜰에서 그분을 세 번 모른다고 부정합니다. 침을 뱉고 조롱과 모욕으로 그분의 영혼은 치욕을 당합니다. 그분은 너무나 잔인하게 그분 육체 안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 뺨을 맞고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관이 씌워져 그분의 얼굴은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위자들에게서 치욕스러운 비난과 수치를 경험하십니다. 그분은 죄가 되어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빌라도는 그때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보냅니다. 헤로데는 다시 예수님을 로마의 통치자에게 보냅니다. 정의의 모든 형태가 그분에게 거부되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무관심을 경험합니다. 아무도 그분의 운명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그분을 찬미했던 군중들은 이제 그들의 찬미를 고발의 울부짖음으로 바꿉니다. 예수님 대신에 살인자를 놓아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시간이 다가 옵니다. 반역자와 노예와 가장 악한 종류의 범죄자들이 받을 만한 극도로 고통스러운 치욕의 형태. 그러나 고립과 모욕과 고통은 예수님이 당하신 박탈의 한도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와 함께 전적으로 연대하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또한 십자가 위해서 신비한 성부 하느님의 버려 두심을 경험하십니다. 그 버려두심 안에서,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 당신을 맡기십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카 복음23,47). 십자가 나무에 매달리시어 조롱을 겪으시며 예수님께서는 이제 마지막 유혹을 받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가서 권능으로 악을 이기고 힘과 불굴의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 주는 유혹.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멸하심의 극치에 있는 바로 그 순간조차 하느님의 진실하신 얼굴, 자비를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못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회개하는 도둑에게 천국의 문을 여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백인대장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이 악의 신비는 불가해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부어지는 사랑의 실체는 무한합니다. 무덤과 저승에까지 이릅니다. 그분께서는 어둠에 빛을, 죽음에 생명을, 미움에 사랑을 가져 오시면서 그분께서 속죄하신 우리 고통 모두를 당신의 것으로 떠안으십니다.

 

실행하시는 하느님의 길은 우리를 위해서 멸하심을 당하시는 것이니 우리 자신을 조금이라도 잊는 것이 어려운 우리들의 길에서는 너무나 멀어 지워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길을 선택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섬김의 길, 내어줌의 길,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잊는 길. 이 길을 걸읍시다. 이 성주간 동안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겸손하신 사랑에 대해 배우기 위해 하느님의 왕좌”,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멈추어 섭시다. 우리가 모든 이기심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기를 포기하도록. 당신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예수님께서 그분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께 우리의 얼굴을 돌립시다.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소멸되신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이 성주간의 신비를 묵상합시다.

 

(바티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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