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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현존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5 조회수822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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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존재가 부정되거나

적어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간주되고 있는

현대에 와서 믿음의 문제는

많은 경우 하느님의

존재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이것은 확실히 중대한 문제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 11,6)

자기가 믿는 하느님의 실체가

전재되지 않는다면

믿음의 삶은 분명

비합리적일 것이다.

믿음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믿음은

이성과 지성으로부터

빛을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믿음은 지성을 돕는

영적인 빛으로,

그 빛은 우리의 제한된

이해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영역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이성과 상극되지는 않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방식으로

그 이성을 초월하기에,

성 안셀모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테르툴리아노의

"이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credo quia imposible)"

라는 말보다는 좀더 그리스도교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그러나 후자의 말에 내포된

역설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에

함축되어 있는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느님의 현존은

이성적으로 탐구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

역시 허용된다.

하지만 과학적인 증명이란

그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되지 않을 때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되는 사람들은,

흔히 철학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고,

그들이 의미론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초보 단계의 제약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

종교적인 문제들은

모든 일관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제약들은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결국 현대의 보통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에 관한

철학적 논쟁은 실제로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문제에 관해서

치열하게 토론한다는 것은

신앙과 이성 양쪽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정직한 마음을

영원한 절망과 이겨 낼 수 없는

의심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더욱 안쓰러운 이유는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지적인 존재로서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존재를

다눈하고 자연스럽게,

그분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 1,20참조)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불확실한 존재들을 깨닫는 순간,

필연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의문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지만

인간적인 경험에 의한

이 근본적인 인식이야말로

때로는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하기도 한

철학적 추론의 시발점이 된다.

이 인식은 이상을 일깨워

신앙의 행위로 이끄는 힘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우리를 영원한 믿음의 길로

초대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자연스럽고

완전히 이성적인 직관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그것을 부정하거나 재해석하고

의식적인 논쟁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믿음의 길로

들어선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삶과 거룩함에서

Thomas Merton 지음

남재희 신부 옮김

-생활성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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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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