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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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5 조회수99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3월 22일 성주간 화요일

  

"Master, who is it?"
 

 

제1독서 이사 49,1-6
복음 요한 13,21ㄴ-33.36-38

?

학창시절에 선생님께서는 종종 시험문제에 대한 힌트를 주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에게 오늘 가르쳐 준 문제와 똑같은 문제를 이번 시험에 출제해도 틀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틀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시험문제를 풀면서 ‘이 문제는 바로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강조하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잖아? 그때 말씀하신 것처럼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이 내셨는데 과연 틀리는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라면서 자신 있게 답을 적었지요.

제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멍청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제가 과감하게 틀리고 만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답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제의 중요성만을 기억하고 있었지, 엉뚱한 답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문제만 알아서는 정답을 말할 수 없습니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문제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 내가 아는 문제인데....’라고 아무리 힘주어 말한다고 해도 정답을 모르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내 주십니다.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답도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정답을 모르는 척 합니다. 즉, 정답대로 살지 않으면서 주님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안 그러셨을까요? 그러나 그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 정답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도 그렇지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정답이 아닌 오답의 길로, 그래서 예수님을 은전 삼십 냥에 넘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오답인 배반의 길을 향해 갈 것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지요. 미리 배반을 막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유다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배반할 제자가 있음을 그의 앞에서 말씀하셨고, 빵을 적셔 주면서까지 다시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힌트를 주고 기회를 주셨음에도 그는 마음을 바꿔서 오답에서 정답의 길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틀린 오답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변화를 보이지 않자, 결국 주님께서는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라고 하시지요.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정답의 길을 살고 있을까요? 정답을 가르쳐줘도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서 오답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우리의 나약하고 부족한 마음을 바꿔주시길 주님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한 사람도 얻지 못하지만 한 마음을 품으면 백 사람을 얻을 수 있다(회남자).


봄이 왔습니다.


소유가 먼저일까요? 사랑이 먼저일까요?

캐나다 토론토에 커다란 화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화재를 쉽게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요. 더 큰 불에도 불구하고 소방관들이 쉽게 화재를 진화하는 것을 많이 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이 불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300명의 소방관이 투입되어 여덟 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겨우 진화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어렵게 진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강풍과 복잡한 건물 구조 등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람들이 모아 두었던 산더미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 모든 물건들이 오히려 위험이 된 것입니다. 소유가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 같지만 더 큰 불행으로 이끌어주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소유가 늘어나면 늘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소유가 먼저라고 하면서 사랑을 계속해서 뒤로 미룹니다. 가족 안의 사랑도 돈 먼저 벌고서 하겠다고 말하며, 이웃을 향한 봉사와 나눔 역시 충분한 소유를 갖게 된 후에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과연 올까요?

많은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애를 썼던 한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날도 열심히 직장에서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더랍니다. 텔레비전에만 집중하면서 자기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무성의하게 다녀오셨냐는 말만 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심지어 키우던 강아지가 자기를 보고는 마구 짖더라는 것입니다.

소유가 늘어나도 사랑이 없어지면 어떨까요? 뒤로 미뤄서는 안 될 것, 분명히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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