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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구원의 완성인 부활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5 조회수1,33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예수 부활 대축일


<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


복음:요한 20,1-9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 구원의 완성인 부활 >

 

구원의 완성은 십자가일까요, 부활일까요?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가 씻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우리 구원 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죄도 용서받지 못한 것이고 구원도 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1코린 15,17)

 

분명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겼는데 부활이 없다면 아직 죄의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뜻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구약의 욤 키푸르라 불리는 속죄의 날을 이해해야 합니다. 710일 대속죄일에 대사제는 이날 하루 세 번, 즉 향을 피우고, 자신의 죄를 위해, 또 백성의 죄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사제를 뽑아 계약의 궤 앞에 연기가 자욱하도록 향을 피워놓고 그가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해 송아지를 잡아 바치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 염소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계약의 궤위에 뿌려야합니다. 그런데 동물의 피로써는 인간의 죄가 사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멜키체덱의 대를 잇는 대사제로서 당신 자신의 피를 들고 보이지 않는 하늘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 우리 모두의 죄를 보속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 피를 들고 들어갔다면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사제가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이 되어 속죄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대사제가 지성소에서 죽었다면 하느님께서 그 제물을 인정하지 않은 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당신 피로써 속죄를 하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갔다가 다시 부활하시어 나타나시지 않으셨다면 속죄가 완성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대사제가 지성소에 들어갔다 무사히 나와야 속죄가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셔야 속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히브 9장 참조).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김익두 목사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황해도 유명한 깡패 출신으로 회개하여 나중에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고 280여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질 정도로 출중한 사목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언덕을 오르다가 잠깐 쉬려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술 취한 사람이 올라오더니 자신보다 빨리 올라와서 기분 나쁘다며 김 목사를 마구 때렸습니다. 김 목사는 때리는 대로 맞아주었습니다.

형님, 다 때렸습니까?”

다 때렸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 ... 내가 김익두입니다.”

이 말에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더니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 목사는 그를 가르쳐 세례를 주고 훌륭한 신자가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야만 하는 이유는 죄를 없애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에서 죄의 상징인 금송아지를 없애기 위해 첫 번째 계명 판이 깨어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그 죄와 함께 죽으십니다. 위의 김익두 목사도 술 취한 한 사람의 잘못이 무엇인지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는 맞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맞지 않으면 그의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고 끝났다면 그는 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밝혀야합니다. 그래야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안을 차지하고 있던 죄를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함께 죽였다면 이젠 그의 주인이 되어 그를 이끌어주기 위해 부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첫 번째 십계명 판은 금송아지와 함께 깨어져야만 했지만, 이젠 새로 쓴 십계명 판이 금송아지를 섬기지 않는 그들의 심장 속에 들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첫 번째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는 일곱 마귀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마귀를 껴안고 죽으시어 이제 참 주인이 되어 그 여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만약 그 여인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그 여인은 죄가 죽었을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다시 죄를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새 주인으로 나타나시어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처음 만난 예수님은 문고리가 없는 문 앞에 서서 그 문을 두드리며 우리가 열어주기를 바라며 기다리십니다(묵시 3,20 참조).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문이 잠겨있는데도 들어오십니다(요한 20,26 참조). 이는 상징적인 표현인데 죄를 위해 죽기 전에는 우리 안에 자아라는 주인이 있어 그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들어오실 수 없지만, 당신이 그 자아를 죽이기 위해 돌아가신 후에는 더 이상 그 집에 주인이 없기 때문에 두드릴 필요도 없이 새로운 주인으로 당신 마음대로 들락날락 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이렇듯 전 주인을 없앴다면 새 주인의 역할을 해야 하시기에 부활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뜻이 죽고 그 안에 주님의 뜻이 살고 있어야합니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공생활 때의 예수님이 아니라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직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나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었던 사도들이나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는 방법이 성경의 이해를 통해서임을 깨우쳐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열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니 예수님을 비로소 알아보게 됩니다. 그때서야 참 주님, 즉 주인님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이 부활 이후의 예수님인 것을 성체를 영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때 내 자신이 주님께 무언가 많은 것을 해 드린다고 착각하고 그것에 대한 보답을 은근히 바라고 있을 때, 그분은 성체를 받아 모시고 들어온 제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나는 너에게 주었다.”

그렇게 생명까지도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내가 무언가 해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그 보답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창피해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분명히 나는 너에게 다 주었다과거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주었다는 말씀은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주신 분이 어떻게 살아계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때 제 안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살과 피를 내어주신 후에 다시 부활하신 그 분이셨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가슴 안에 새 계약의 판을 모시게 되는데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구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뉩니다. 만났어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만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그분의 첫 번째 만남, 즉 십자가를 통한 만남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오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건네시며 우리 자신을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십니다(갈라 2,19 참조). 그리고는 부활하셔서 주인 없는 우리를 차지하시는 것입니다. 이전의 못된 리더가 사라졌다고 그 공동체가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새 참된 리더가 나타나야만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이유가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로 기뻐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구원을 완성하고 싶거든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못 박고 참 주인을 찾아 헤매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성경으로 가슴을 뜨겁게 하여 부활하신 그분을 주님으로 만나 뵈옵고 모시려는 노력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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