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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7 조회수1,13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3월 26일 성토요일

독서


복음


교회는 성토요일에는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다.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무르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한다. 이날은 노자 성체만 허락되며, 주님 만찬 성목요일의 만찬 미사 뒤에 제대포를 벗긴 제대는 오늘도 그 상태로 둔다. 장엄한 부활 성야 예식을 거행한 뒤에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이 기쁨은 50일 동안 넘쳐흐른다.?

 

 

무엇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인간의 뇌에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 있는 이를 전두엽에서 담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두엽이 손상된 사람은 “내일 뭐 해 볼 생각이세요?” 등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마치 백지 상태의 마음 상태를 갖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사실 이 전두엽의 손상은 현재의 순간을 사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단지 그때그때의 현실만 따르는 존재로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옛날에는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등의 전두엽을 일부러 손상시켜서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에게 잘 참도록 해주고 또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것일까요? 즉, ‘영원한 현재’만 사는 삶이 과연 윤택한 삶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 미래이기에 우리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면서 즐거움을 얻을 때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최고로 멋진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는 상상, 거액 복권의 당첨되어서 돈방석에 앉는 상상, 사랑하는 내 자녀가 성공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상상, 미지의 낯선 곳을 여행하는 상상 등등,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그 자체로 분명히 즐거움을 줍니다.

물론 이렇게 즐겁고 매혹적인 상상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상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나쁜 상상도 있다면서 아예 상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미래에 대한 희망도 완전하게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희망을 버려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치 일부러 전두엽을 손상시키는 사람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당신이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한 해의 교회력 중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뽑으라고 하면 아마 사순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들이 바로 성주간, 특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성삼일이지요. 각 본당에서는 이 주간은 참으로 바쁜 날입니다. 워낙 중요하고 또 의미도 깊은 날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지요. 사제 역시 복잡한 성삼일 전례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내고 맞이하는 부활 대축일은 너무나 큰 기쁨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께서는 세상의 부정적인 악의 세력들을 이기시고 부활하십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직접 보여주심으로서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부활의 기쁨으로 힘차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녁 맞이할 주님의 기쁜 부활을 잘 준비하였으면 합니다.

죽음은 현자를 결코 기습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세상을 뜰 준비가 되어 있다(라 퐁텐).


예수님 무덤에서의 미사.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올바르게 살겠다고 또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원의 열쇠가 그분께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하느님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두려운 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기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사랑의 약속을 하면서도 마음을 바꿔서 사랑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은 아닐까요?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사랑의 약속을 깨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가득하신 분으로 가깝고 좋은 분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이제 부활의 해가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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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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