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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믿는 우리는 /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28 조회수1,297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은 구원의 역사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3세기까지 초까지만 해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한 주간은 자기들의 축제로 생각했다. 이것이 12세기부터는 부활 축제를 8일에서 성령 강림까지 7주간을 부활 시기로 정해 지금까지 이어온다. 예수 부활 대축일의 날짜는 해마다 달라진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기에.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이를 기준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을 지내고 첫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결정하였다. 부활의 신비가 완성되는 성령강림 대축일까지인 50일간에 그분 은총이 풍성히 내린다고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ㄴ).”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필이면 제자들이 왜 갈릴래아로 가길 바라셨을까?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은 갈릴래아 나자렛이었다. 그곳은 그분 삶이 깃든 마음의 고향이었다. 사실 갈릴래아는 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지역이지만, 거기에 살던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인으로 힘들게 살았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만날 곳이 갈릴래아라고 하신 말씀은 앞으로의 제자들의 소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이제 다시 ‘정든 갈릴래아’로 가야만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게 될 게다. 예수님의 부활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소식이다. 그리고 부활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라는 부르심이리라. 부활은 이론이 아니다. 지나가 버린 기록된 사건도 아니다. 부활은 믿음이며 은총이다.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하는 신비이다. 그러므로 이 부활을 단순히 일상에서 체험하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 ‘부활의 은총’을 그저 바라는 것만은 아닌지?

 

당시만 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맞는 여러 부류가 있다. 신앙으로 받드는 여인들, 의심하는 경비병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수석 사제들이 있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부활의 신비는 거부당하게 될 게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갈망했던 여인들에게만 당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그분의 은총이다.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 그 부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주어지리라.

 

이렇게 부활은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는 없었다. 믿는 이에게만 기쁨이었다. 우리는 예수님 부활을 진정으로 믿을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게 참된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두려워말고 믿자. 그러면 오늘 이 하루도 어제와 다른 새로운 부활이 될 게다. 우리는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확실히 믿는 참된 신앙인이다. 아마도 ‘부활의 은총’은 우리 모르게 이미 우리 삶 어디에 은은히 퍼지고 있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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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부활 대축일,성령 강림,니케아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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