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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3-30 조회수1,522 추천수12 반대(0)

오늘은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락방에서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할 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빈 무덤은 무엇일까요? 내가 주님을 보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메마른 것은 아닐까요? 내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공주병과 왕자병에 걸린 사람은 이웃의 모습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갑질을 하곤 합니다. 이병은 많은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마르타 중독증입니다. 활동을 할 때는 성당에 잘 나옵니다. 구역장, 반장을 하고, 레지오 단장을 하고, 사목위원을 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중에는 잘 나오지만 활동을 멈추면, 이사를 가면 잠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서 머물지 못하였기 때문에 활동이 멈추면 신앙도 식어버리곤 합니다.

남들에 대한 험담과 비난을 즐겨하는 병입니다. 이 병은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잘 걸리는 병입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겸손을 말하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희생과 봉사를 말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자신의 지식을 포장해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빈 무덤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이 빈 무덤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예수님을 보려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주님께로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의 모습에서도, 봄에 피어나는 새싹에서도, 어린아이의 맑은 얼굴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고, 그들의 모습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 부활의 참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만 보아서는 부활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빈 무덤이어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복음 3덕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3덕은 정결, 가난, 순명입니다.

 

독신은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입니다. 혼사 살면서 권위적이고 교만하며 자신 밖에 모른다면 그것은 참된 독신이 아닙니다. 가정을 가졌어도 하느님이 삶의 중심에 있다면 정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혼자 사느냐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난은 영혼을 맑게 만드는 향기와 같습니다. 교회가 부유해지면, 사제의 삶이 부유해지면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제는 병든 이, 가난한 이, 외로운 이, 장애인, 독거노인, 냉담자를 우선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셨지만 스스로 가난함을 선택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순명은 좋은 것만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듯이, 고난의 잔을 마셨듯이 나쁜 것도 괴로운 것도 주님을 위해서 따르는 것이 참된 순명입니다. 신자들 때문에, 주교님 때문에, 시간을 잘못 만나서, 친구들 때문에 핑계를 대는 것은 참된 순명이 아닙니다. 사제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부르심에 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벅찬 감동을 얻어서 주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길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에게 엠마오는 더 이상 의미도 가치도 없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예수님께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언제 어디서이든지 엠마오가 되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로 있어도, 학교 교수 신부로 있어도, 교구청에 있어도, 병원의 원목으로 있어도, 교포사목을 해도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엠마오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곳은 바로 엠마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하느님 나라도 어쩌면 그와 같을 것입니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산다면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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