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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2 토 / 내 완고함의 강을 넘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01 조회수1,781 추천수7 반대(0) 신고



부활 팔일 축제 내 토, 마르 16,9-15(16.4.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함을 꾸짖으셨다.”(마르16,14)


The Commissioning of the Eleven

 



내 완고함의 강을 넘어

부활 신앙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을 믿고 받아들여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에 이어 다른 두 제자의 목격담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16,9-1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고 완고한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16,14). 그분께서 꾸짖으시자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게 되어 믿음을 회복합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16,15).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선포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완고함에 대해 성찰해봅니다.

먼저 완고함은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없앨 빌미를 잡으려고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던 바리사이들을 보고 노기를 띠시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습니다(마르 3,5).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묻는 바리사이들의 완고함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마태 19,3-8).

그뿐 아니라 바리사이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예수님 앞에서 먹을 빵 타령이나 하고 있는 제자들의 완고함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보고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마르 8,17).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8,18)라고 말씀하십니다. 완고함은 하느님께 저항하는 타고난 성향을 가리킵니다(마르 10,5). 이런 성향이 드러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져 사람은 물론 하느님마저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됩니다. 교만의 늪에 빠지는 것이지요.

완고한 마음이 솟아나면 하느님이 아닌 다른 대상에 집착하게 됩니다. 돈, 사람, 물건, 일, 명예가 걸린 자리, 세상이 주는 쾌락, 명품, 건강보조식품 등 자신을 위한 것을 찾느라 넋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상태에 빠지면 자신과 돈과 세상 즐거움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완고함 속에 살면 ‘정신이 어두워지고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져”(에페 4,18) 불신에 떨어집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려면 깨어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굳은 마음을 녹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해야 합니다.”(히브 3,13)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받아들이고 체험하여 전하기 위해 독선과 고정관념, 완고함의 강을 건너기로 다짐하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완고함의 강을 사랑으로 건너는 행복한 우리였으면 합니다. 자신과 세상 것에 몰두하는 어리석음과 교만의 강을 건너 나의 가나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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