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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의 증언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03 조회수1,85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5년 다해 부활 제2주일


< 나를 보지 않고서도 믿는 이는 행복하다
 >


복음: 요한 20,19-31







그리스도(Young Jew as Christ)


렘브란트 작, (1656), 베를린 국립 박물관


< 교회의 증언 >

 

오늘 예수님께서 여드레째 날 만에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특별히 토마스의 믿음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토마스는 어쩌면 자신만 없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고 믿기 싫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상처를 보고나서야 믿음을 고백하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왠지 예수님은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도 억울한 일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나타나시고 자신에게만 보지도 않고 믿기를 원하셨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관계는 그 믿음이 클수록 그 관계의 돈독함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왕에게 아주 충성스러운 의사가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의사를 시기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의사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왕이 마시는 컵에 그 의사가 독약을 넣을 것이라는 거짓 편지를 써서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왕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편지를 읽어주면서 자신이 의사를 믿고 있다는 표시로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증거를 보고서야 믿는다면 그만큼 관계가 얕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사실 모든 관계가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까지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때 나를 입양해서 키우셨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저를 다리 밑에서 주워오셨다고 자주 말씀하셨고, 어떤 때는 정말 그 다리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어머니가 아니면 주실 수 없는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아닌 것 같다고 그 확신을 갖기 위해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가져다 DNA검사를 하고 나서 어머니임을 인정했다고 한다면 그 관계가 참다운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매우 얕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노력하여 당신께 대한 완전한 믿음까지 다다르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그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을 붙들지 말고 교회에 당신의 부활을 알리라고 명령하십니다(요한 20,17 참조). 또한 다른 여인들에게 천사들을 통해서도 베드로와 제자들, 즉 교회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라고 합니다(마르 16,7 참조). 또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당장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돌아가서 자신들이 본 것을 증언하였습니다(루카 24,35 참조). 바오로가 교회를 박해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사도들과 상관없이 복음을 선포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바오로 사도도 교회에 의해 파견 받습니다(사도 13,2-3: 15,22 참조). 그가 예수님을 만났더라도 교회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가 온전히 눈을 뜬 것은 교회로부터 파견된 하나니아스의 안수를 통해서였습니다(사도 9,17 참조). 그리고 오늘도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토마스의 믿음을 북돋아주시기 위해 따로 토마스를 방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토마스가 교회와 함께 있지 못했다면 영영 믿음의 확증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활 후의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베드로 사도를 중심으로 뭉친 사도단, 즉 교회 안에서 모든 이들이 그 증언을 얻고 확증하기를 바라신다는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교회는 부활의 증언들이 모이는 집합소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증언을 믿지 못한다면 특은을 입어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도 믿음에 대한 칭찬을 들을 생각은 포기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부터 모든 증언은 둘이나 셋 이상이 되어야 증언이 성립되지 혼자만의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신명 19,15 참조). 그리고 교회의 본성 또한 둘이나 셋이 당신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이는 것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8,20 참조). 교회는 우리가 믿음을 확증하기 위한 수없는 증언들이 모여 있는 집합소입니다. 문제는 그 증언들보다 자기 자신에게 직접 나타나셔야 믿겠다는 교만입니다. 토마스가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교만 때문입니다. 나머지 열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하면 믿어야 하지만 그의 교만은 자신에게 직접 나타나셔야만 믿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1997년 신학교 들어간 해 11일부터 비르짓다의 7기도를 지금까지 매일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핏방울 수대로 하루에 7방울씩 12년간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 기도를 바치는 이의 연옥의 고통을 면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가까운 5명까지도 연옥의 고통을 면하게 해 주고, 그 기도를 바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치명자의 지위까지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저는 로마에서 공부할 때 비르짓다 성녀가 세운 수도원 수녀님들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비르짓다는 교회에서 인정한 성녀이시고 이는 교회가 그에게 내리신 사적계시들도 인정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믿어도 되는 증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 이 기도를 권했더니, “나는 그렇게 얍삽하게 기도하지 않을 거야. 내가 노력해서 연옥도 안 가고 치명자의 지위에 올라야지라고 하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냥 하루에 10분씩만 바치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직접 칼을 맞아 치명하러 가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바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알려주셨을 텐데 그것을 거부하고 굳이 다른 길을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니 아버지 침대 앞에 자비의 예수님 상본을 붙여드렸습니다. 그 성화를 공경하고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고 한 번만 하더라도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미신 행위가 아닙니다. 그분이 나에게 나타나시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모아진 증언입니다. 오늘 자비의 주일을 지내고 있는데 파우스티나 성녀의 조사를 맡았던 분이 교황님이 되셔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그 교황님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이십니다.

요즘 또한 아버지 신부님 있는 성당에 가서 매달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를 주례하고 다섯 번의 성모 신심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파티마의 발현을 목격한 루치아 수녀에게 발현하시어 죄로 인해 상처 받은 성모 성심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매 첫 토요일 다섯 번 연 이어서 고해성사와 영성체하고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묵주기도 신비를 15분 동안 묵상하면 임종 때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섯 번만 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되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보험이나 다름없습니다. 보험을 들어놓고 살면 마음이 편할 텐데 이 같은 구원의 확증도 잘 모르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 밖에도 교회 안에 모아진 신심들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성주의자가 되어버린 신자들은 마치 토마스처럼 자신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구원의 확신을 주시지 않으면 꿈쩍도 안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은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 머물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토마스처럼 확증을 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공로가 적고 영원히 나의 노력으로 믿음을 가질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당신 부활에 대한 증언이 모이게 했다면 교회에서 솟아나는 증언을 믿고 내가 교회 전체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되이 교회의 증언을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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