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05 조회수1,106 추천수6 반대(0)

오늘 초대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3년간 있었습니다. 벌써 17년 전의 기억입니다. 신자들과의 첫 미사에는 5명이 함께 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한분은 해설이셨고, 한분은 독서였고, 두 아이는 복사였습니다. 다른 한분은 아들 신부가 본당신부가 되었다고 찾아오신 어머니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머니와 함께’라고 미사를 드렸던 기억입니다.

 

주일 미사에서 헌금을 정리했습니다. 헌금액수는 195,000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3년 동안 재정적인 문제로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당을 떠날 때는 거금 삼천만원을 남겨드리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시골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 지냈습니다.

이제 막 짠 우유를 끊여서 소금을 넣어 먹어 보기도 했고,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겨울에 꽁꽁 얼은 임진강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냇가에서 아이들과 물장구도 쳤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했고, 이름 없는 들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았습니다. 성당의 텃밭에 호박, 가지, 배추, 방울토마토, 상추도 심어서 키워 보았습니다.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개구리 소리가 들리면 성당이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성당에는 작은 공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이신데 어린아이들이 6명 있었습니다. 새진, 새봄, 은솔, 한솔, 동연, 승연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새진이만 성당에 나왔는데, 수녀님께서 새진이 집에 찾아가서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6명으로 늘었습니다. 공소 마당에서 게임을 하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매달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는 날을 정했습니다. 한번은 문산에 나가서 햄버거를 먹기도 했습니다. 공소에 아이들이 있으니 공소도 활기를 되찾고, 그 아이들이 복사를 서니까 할머니들께서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그 시간들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일정표에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있고, 정신없이 지내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구청에 있으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일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교구의 산적한 문제들도, 초대교회의 뜨거운 열정을 생각하면 풀릴 것입니다.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외친 것처럼 “나 돌아갈래!”라고 외쳐보아야 소용없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때면, 시골에서의 3년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욥 성인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도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를 드렸으니,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신다 해도 감사를 드립니다.’ 욥 성인에게 행복의 기준은 재산, 능력, 화목한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도들은 공동체를 이루었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었으며, 모두가 부족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바르나바는 자신의 것을 공동체를 위해서 봉헌하였지만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도들이 처한 환경이 더욱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아직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박해의 칼날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능력이 갑자기 커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능력도, 재산도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그들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행복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주어집니다. 원망과 미움, 시기와 질투의 바람이 불면 그만 큼 나는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미, 희망과 겸손의 바람이 불면 나는 그만큼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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