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07 조회수1,401 추천수12 반대(0)

요즘, 한국의 신흥종교에 대한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으뜸가는 가르침입니다. 종교는 삶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종교는 지치고 외로운 이들의 피난처가 됩니다. 종교는 오직 인간만이 믿습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예비자 교리시간에 사이비 종교와 올바른 종교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아서 한 사람의 인격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바른 종교의 4가지 조건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시자입니다. 부처님, 예수님, 마호메트와 같이 창시자가 명확해야 합니다. 또한 그분들의 삶이 참된 지혜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창시자가 명확하지 않은 종교는 올바른 종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경전입니다. 불경, 성경, 코란과 같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경전이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경전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경전을 통해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회성입니다. 종교는 독단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야 합니다. 불쌍한 이웃을 돌봐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부끄러움을 뉘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겸손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내세관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있고, 그래야 지금의 행복에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도들은 박해와 시련이 있었어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바라셨고, 그래서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들 예수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와 너의 만남, 오늘날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영성의 세계에서는 다 만남입니다. 만남 속에서 성장하며, 만남에서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평생 볼 수 없는 얼굴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얼굴은 직접 보지 못합니다. 거울을 통해서 봅니다.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타인을 통해서 봅니다.

 

우리는 4개의 창으로 서로를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내가 있습니다. 열려진 나입니다.(Open) 이 지평이 넓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잘 알고 있었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은 서로를 신뢰하였고,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나는 아는데 남은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Hidden) 오늘 제1독서에서 사두가이파 사람과 경비대장들은 제자들이 아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감옥에 가두려했고, 제자들의 말을 이해자지 못했습니다. 이런 만남에서는 진정한 나눔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세 번째는 나는 모르는데 남이 아는 내가 있습니다.(Blind) 오랜 만에 만난 동창들은 나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 어떤 배우자는 남편이 다 잊어버린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들을 들추어내고 싸움은 더욱 심각해지곤 합니다.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경우들이 있습니다. 나는 고집도 없고 나름 유하고 부드럽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내가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나도 나를 모르고, 남도 나를 모르는 경우입니다.(Dark)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의지대로 향하지 않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남을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의 갈증은 해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너의 갈망을 달라!’고 하십니다. 무엇인가 갈망이 있습니다. 마중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너의 갈망을 달라. 네가 너에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 물은 네 안에서 샘솟는다. 내가 부어주는 것이 아니다. 네 안에서 샘이 솟는다.’고 하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말씀을 알고, 인격적인 하느님을 만나야 목마르지 않습니다. 삶의 자리에 복음이 없다면 외롭습니다. 영적인 샘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이 거기에 있습니다. 더불어 살면서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영성이 빛을 보며, 우리는 성장해 갑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