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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결론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07 조회수1,140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결론

예수는 우리의 거룩함이자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15,5)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일까?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그분 안에 머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사랑을 다해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15. 21.24)

그리스도의 뜻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35)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진실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거룩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히

수동적이고 생기 없이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투쟁과

내적 갈등이 없는

영성 생활은 없다.

이 싸움이 더욱 힘든 것은,

우리가 겪는 갈등이

숨겨져 있고,

신비스럽고,

때때로 이해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신앙생활 초기에

몇 가지 희생을

하기 원할 것이다.

좋은 출발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시작한 일을 계속

끌고 나가며 죽는 날까지

몇 십년이고

지속한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너무 엄청나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사랑에 지워진 짐은

너무 무겁다.

아니면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하기에 두려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분과 함께 죽어야 하는

소명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세례 때

그분과 함께 죽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계속될 죽음과

부활이라는 시리즈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단 한 번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련의 크고 작은

'회개'와 내면의 변혁들을

거치면서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두 번의 변혁들은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는 반면,

우리 내면의 자아를

더욱더 많이

내어놓아야 하는 것에는

주저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성화를

이루어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분께서 활동하시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분은 우리의 힘과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본성들을 더 많이

앗아 가시기에,

결국 우리는 완전한 가난과

암흑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극도로

고통스러워하고 반항한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기묘하고 거룩한 신비가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만족을 주는

일상 활동을 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뜻을 버리고

사소하지만 우리를

'만족시키는' 제반 양식들,

즉 우리에게 흥미를 주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흥미를 줄 수 있는 것에서

도피처를 찾으려한다.

우리는 이 방법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우리의 활동들은

영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끝나고 말 것이다.

십자가의 쓴맛과 모순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고 있던

뉴먼 추기경은

"평화 이전에

거룩함을 추구하라."

금언에 따라 살았다.

이 금언은 그리스도교적 삶이

갖고 있는 가슴벅찬 진지함을

기억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한다면

제때에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주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우리 자신의 불안한

노력에 의존하는 한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같은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평화를 포기하고

그것에 대해 잊을 때만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삶에 있어

암흑과 시험이라는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는 말자.

이들에게는 암흑도

영적인 빛으로 채워지고

믿음은 이해와 지혜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게 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그러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죄를 지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거나

모든 윤리적인 약함을

이겨낸 사람이 아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영적으로 눈이 열려

그리스도의 자비의

모든 차원을 알 수 있게 되어,

더이상 현세의 슬픔과

덧없음으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경험으로

하느님께서 절대로

그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그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 된다.

이 깨달음은

충실한 믿음의

새로운 차원일 따름이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에

완전한 신뢰로 응답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란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 5,3-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말했듯이

거룩한 자비에 대한

희망과 지식이 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항상

하느님 대전에 머무르며

비록 외적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그분께로 향하고

그분의 은혜에 의존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들 마음속의 소망은

표현되든 아니든 간에

모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인

완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선하게 보이는 것은 물론

악하게 보이는 것조차도

실제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모든 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 주고

또한 그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라도록 해준다.

모든 사건들은 그들이

하느님과 가까이 일치할 수

있도록 봉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방해물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방해물조차도,

곧 그들의 결함까지도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 으로 사용하신다.

이것이 '영적인 완전함'

참된 의미이다.

그것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나

하느님의 사랑에

완전히 의탁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거룩함의 마지막 단계는

십자가라는 명백한 바보짓에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 것,

확신에 찬 즐거움으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코린 1,18)

이 바보짓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차원 모두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관심을

포기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 위하여

세속적인 자아를

죽음에 내맡기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집착을 버리는 것으로

완전한 포기의 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환희를 얻기 위한

최종적인

전환점이기도 하다.

자신을 포기하고

()의 심연 속에 잠겨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유를 찾는 것,

이것은 우리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쉬거나

노력함으로써,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인 사랑으로 변화된

완전한 믿음,

용약하는 희망에 있다.

이것은 순전히 그분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기 위해

용기와 겸손과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모든 상황 안에서

그분의 뜻에 단순하고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삶과 거룩함에서 ()

Thomas Merton 지음

남재희 신부 옮김

- 생활성서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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