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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31;사도2,1-11)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11 조회수99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43/주일복음말씀묵상/ (2)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31;사도2,1-11)

 

<* 이 글은 앞의 (1) 성령을 받아라! (요한20,19-31; 사도2,1-11)에 이어 계속되는 글이다. 이 글의 주요 내용은 성령의 두 방면에 대한 것이다. 오랜 동안 이 부분에 대하여는 수많은 해석들이 있어왔지만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 왜 이 중요한 부분에서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일까? 왜 이 중요한 부분을 교회는 믿는 이들에게 쉽게 가르치지 못하는 것일까?>

    

<성령의 두 방면의 표현>

성경은 하느님의 영인 성령과 믿는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두 방면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한 방면은 그분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며, 또 한 방면은 그분이 우리 위에 계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그분이 생명의 영으로 내적인 본질의 영이 되는 것이며, 우리 위에서 그분은 능력의 영으로서 외적인 경륜의 영이 되는 것이다. 본질적인 면은 생존과 생활을 위한 생명을 얻게 하며, 경륜적인 면은 하느님의 일을 위한 능력과 은사를 갖게 한다.

 

요한14,17절은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기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시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령과 우리와의 내적인 방면의 관계를 언급하는 표현이다.

 

사도1,8절은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성령이 우리 위에 임하실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과 우리와의 외적인 관계를 언급하는 표현이다. 주님은 한 면에서는 우리 안에 계심을 말씀하셨고, 또 한 면으로는 성령이 우리 위에 계심을 말씀하셨다.

 

<성령의 두 방면의 약속>

먼저 내적인 면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자! 에제36,26-27절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내 신을 너희 속에 두고곧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요한11,25절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고,”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활이 생명의 문제임을 계시한다. 참 생명은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죽음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은 생명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아들만이 생명이라 말하는 것이다(1요한5,12).

 

또한 요한복음 12장에서 주님은 자신이 생명을 분배하기 위한 한 알의 밀알로 계시하셨다. 생명의 줌, 곧 생명의 분배의 원칙은 죽음과 부활이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1코린15,45에서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주님의 부활로 성취된 내적인 면의 성령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과 존재를 위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제 외적인 방면의 약속을 살펴보자! 요엘2,28절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한다. 오순절 날 이 약속이 성취되었을 때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성령의 외적인 면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확증했다(사도행전 2장 참조)!

 

루카24,49절과 사도1,4-8절은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외적인 면에 대한 말씀이다!

 

<성령의 두 방면의 성취>

먼저 내적인 방면을 보자!

요한20,19-22절은 그날, 곧 그 주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자기들이 있던 곳의 문을 다 닫고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평안이 있기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시니,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평안이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여러분을 보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분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그들로 하여금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 안으로 숨을 내쉰 것을 말한다. 주님은 죽으시기 전에 내적인 성령을 약속하셨고(요한14,16-17; 16,7), 이는 부활하신 직후에 성취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탈출23,19절에서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나의 하느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라고 말한다. 첫 열매로서 그리스도는 새롭고 신선하시다.

 

부활하신 날 아침에 그분은 아버지께 직접 가서 그분 자신을 첫 열매로 아버지께 드리실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마리아 때문에 지체하셨는데, 마리아는 그분을 부활 안에서의 곡식 한 단으로 누렸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 당일에 수확물 중 첫 열매의 예표가 성취되었다! “성령은 받으라것은 하늘로부터 부어진 생명주는 영으로서 그분의 구속된 사람들에게 완전한 누림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 영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좋은 땅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외적인 방면을 보자! 부활하신 후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사역의 면, 곧 외적인 위에서 내려오는 능력의 성령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주님이 승천하신지 열흘 후에 성취되었다. 곧 외적인 면의 약속은 부활하신 후에 약속하여 승천하신 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상고하면, 성령의 두 방면과 주님의 부활 승천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성령의 두 방면이 주님의 부활 승천과 관계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사도2,1-8절은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있었더라.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맹렬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에 가득하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한다. 주님의 승천 후 오순절 날 임한 성령은 급하고 맹렬한 바람으로 상징된다. 이것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있었던 제자들이 얻은 바, 그들 위에 임한 능력의 성령이다!

호흡은 바람과 가깝다. 호흡이 강화될 때 그것은 바람이 된다. 바람이 부드럽고 잔잔하면 그것은 호흡이 된다. 호흡과 바람은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다. 한 가지 것의 두 방면이다! 생명을 위한 호흡이 강화되어 역사될 때 그것은 능력을 위한 바람이 된다. 호흡을 위한 신선한 공기는 강한 바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20,22절의 숨을 내쉼과 사도2,2절의 바람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요한20,22절의 숨을 내쉼은 본질적으로 제자들의 영적 존재와 영적 생활을 위해 생명주는 영을 제자들 안에 넣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2,2절의 바람은 이미 속에 본질의 영을 받아들인 믿는 이들 위에 능력의 영을 부어 주기 위한 것이다!

 

능력의 영이 부어진 것은 믿는 이들의 영적 존재나 영적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다. 능력의 영이 부어짐은 믿는 이들의 하느님 일의 사역과 움직임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의 본질적인 면은 생활을 위한 것이고, 하느님의 사역을 위한 경륜적인 면은 사역, 곧 하느님의 일을 위한 것이다. 숨을 내쉼은 생명을 위한 것이지만, 바람이 부는 것은 능력을 위한 것이다.

 

<성령의 두 방면의 체험>

이제 위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의 두 방면에 대한 성경의 체험들을 보자! 마태1,20절은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말한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본질적인 방면의 체험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분 안의 성분은 완전히 성령의 성분이다.

 

그러나 마태3,16절에서 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잉태될 때 그분은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성분으로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으실 때 그분 위에는 성령이 임했다. 그로부터 예수님은 공생활의 능력 있는 사역을 시작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두 성령을 오해하지 말아야만 한다! 이것은 또한 레위2,4-6의 소제와 관련된다. 소제의 기록을 보면 고운가루는 변함이 없지만, 기름에 두 방면의 적용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반죽되는 것과 부어지는 것이다. 반죽되는 것은 내적인 것을 의미하고 위에 부어지는 것은 외적인 면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기름에 적용에 두 방면의 예표, 곧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의 예표를 볼 수 있다.

 

또한 제자들 역시 두 방면의 체험을 가졌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호흡을 불어넣으셨다(요한20,22). 이 때 제자들은 내적인 방면의 성령을 체험했으며, 오순절 날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을 위로부터 부었을 때 외적인 방면의 성령을 체험했다.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도 성령의 두 방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1코린12,13절에서 바오로는 몸의 생활을 언급하면서 성령의 두 방면을 언급했다. “우리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밖의 물에 잠기는 세례와 마시는 것을 본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외적인 것이며, 마시는 것은 내적인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축복하셔서 이 두 방면에 치우침이 없이 합당한 체험으로 인도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는 강한 바람의 체험이 중요하다. 그것은 주로 우리 삶의 고난 가운데 체험하는 것으로, 우리의 영적인 진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는 외적인 성령의 체험이 필수적이다! 이 외적 성령의 체험을 특별히 성령세례라고 부른다!

 

주님!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를 축복하소서!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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