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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아닌 상대의 처지에서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19 조회수1,290 추천수7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심리학에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특정이 공통으로 갖는 고정된 사고’란다.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를 보기보다는 먼저 판단을 내리고 나서 보기에. 이를 잘 이용한 게 마술이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정작 볼 때는 탄복을 한다. 이 편견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차별로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판단한 다음 편견을 갖고 예수님을 대했다. 그래서 하느님 이름으로 행한 그 많은 일도 인정하지 않았다. 거짓과 위선의 어둠인 세상 것에 묶이면, 이렇게 ‘빛이신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리라.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니셨는데,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정녕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 10,22-24 요약)’ 유다인들 몇몇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윽박지른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면 기적을 베풀어서라도 자기들을 꼼짝 못하게 해 보라는 거다. 여전히 긴가민가하고 있다. 한쪽만을 본다. 인간 예수님만을 보면서 그분 안의 하느님 모습은 인정하지 않는다.

 

지독한 고집이다. 인정하면 아름답지만 배척을 일삼는 고집은 추하다. 한쪽만 보는 반대가 그렇게 만드는 걸까! 마술보다 더 놀라운 기적까지 비난하게 만드니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는 어디에 속할지? 유다인들은 그렇게 편견을 가졌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시지 않은 분이시라는 거다. 그들도 분명히 여러 기적을 보았다. 불치병을 앓던 이가 낫는 것을, 마귀 들린 이가 자유롭게 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독한 똥고집이다. 믿음은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는 언제나 용기 있는 일이다.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힘’ 중의 하나가 긍정의 자세이다. 그 힘은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기가 힘들게다. 윽박지르면서 하늘에서 오셨다면 기적을 베풀라고 우기는 건 정말 꼴불견이다. 목자와 양은 한마디로 신뢰의 관계이다. 양들은 시력이 약해 잘 보지 못한다나. 대신 자신을 이끄는 목자와 다른 이의 음성은 정확히 구별한다. 그러기에 자신을 이끄는 목자만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눈과 손으로 확인 없이도 신뢰한다. 보는 것도 믿지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신뢰를 받을 수가? 요즘 우리들 곳곳에 안타깝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신뢰가 많이 무너져 있다.

 

우리 모두는 신뢰 회복을 하도록 기도해야 할게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우선 잘 듣는 거다. 그래야 의도를 잘 파악하리라. 그런데 우리는 상대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지, 또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입장에서가 아닌 상대의 처지에서 ‘배려하는 습관’을 기르자. 그럴 때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메시아,예수님,신뢰 회복,고정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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