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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평화와 여유로 가득 찬 삶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22 조회수1,282 추천수6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바둑 전문 기사들이 한 판을 두고서 ‘복기’(復棋)라는 걸 한다. 복기란 자신이 둔 착 점에서 잘 두고 못 두었는지를 살피려는 거다. 그들은 약 300여 개나 돌을 두면서 자신이 놓은 돌을 순서대로 재현할 수 있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것은 그들이 놓는 순서를 기억하는 게 아닌, 하나하나 놓을 때마다 그게 전체에 미치는 의미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이 놓은 돌을 자연스레 ‘그대로 다 기억’된다나.

 

우리 삶의 시간도 무의미하게 보내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한 순간 한 순간 바둑돌을 올려놓듯 말과 행동이 삶과 이웃에 어떤 영향과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도 죄다 기억할 수 있으리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ㄴ).’ 예수님은 이 말씀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도록 ‘삶의 물음표’로 바꾸어 볼 수 있다. ‘나는 그분 길을 가는지, 판단과 선택은 진리에 근거한지,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행동을 했는지?’라고.

 

버스 승객이 묻는다. “종각 갑니까?” “여기가 종각인데요.”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답하셨다. “내가 길이다. 그리고 내가 목적지다.” 토마스는 자신의 길을 모른다며 길을 물었다. 그런데 사실 그는 목적지도 모르리라. 그래서 그의 질문은 정확하다. 목적지를 모르기에 길도 모르는 거다. 지금 바로 눈앞에 목적지이신 분이 서 계시는데도, 그분께 엉뚱하게 묻는 거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 목적지이시고, 또 그분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갈 수 있기에 분명히 ‘길’이시다. 예수님과 하느님은 함께 길을 가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잘 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만 그친 채 실제로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생명력을 잃어버리라. 예수님을 모시는 이는 가는 그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언제나 편하고 쉽지만은 않을 게다. 그 길이 우리에게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일 수도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진리이시다. 많은 이가 현실에 눈이 어두워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단다. 진리라는 말은 실체를 덮은 베일을 벗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베일에 가린 채로만 볼 뿐, 그 실상은 보질 못한다. 예수님은 그 본질을 덮은 베일을 벗기신다. 그리하여 그분을 이해하는 이는 그 근원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삶에 참여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분 생명이 우리 안으로 온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렇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때에만 우리 내면은 더욱 정화되고 우리 얼굴은 예수님 얼굴을 닮아 늘 평화와 여유로 가득 차게 될 것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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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진리,토마스,평화,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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