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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4,16)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22 조회수1,681 추천수0 반대(0) 신고

B-1-1/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4,16)

 

 

구약성경은 수차례에 걸쳐서 구원이 여호와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구원의 일이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사람이 죄를 범했으므로 우리는 구원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려는 생각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람은 범죄 하였고 멸망해야 마땅한 존재였지만, 그러나 사람에게는 구원을 찾고자 하는 뜻과 능력이 없었다.

 

사람은 범죄 하였고 죽어 마땅한 존재였으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려는 생각을 먼저 가지셨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거듭거듭 구원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지, 우리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는가? 하느님은 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는가?

 

가장 큰 원인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동시에 그분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을 구원하실 필요가 없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한 면에서 사람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며, 또 한 면으로는 하느님에게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 죄가 없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으시다.

 

만일 사람에게 죄가 있는데 하느님에게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끝장임을 본다! 오늘날 구원이 이루어지고 복음 전파가 있는 이유는 하느님에게는 사랑이 있는 반면에, 사람에게는 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는 우리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공급하심을 보여준다! 만일 그런 필요성이 있고 공급이 없다면 길이 없게 된다!

 

그런데 만일 공급만 있고 필요성이 없다면, 헛된 공급이 된다. 구원이 이루어지고, 복음이 전파되는 이유는 바로 가장 큰 두 가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는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영원히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성경이 중요시하는 두 가지 사실이다. 만일 이 양 면 중에서 한 면이라도 잃는다면 구원은 사라진다. 양쪽 다 잃지 않고 한쪽만 잃더라도 구원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 하느님에게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구원이 있고 복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략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에는 세 방면이 있다. 첫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셋째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표현되셨다는 것이다!

1요한4,16절은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해 가지신 사랑을 알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거하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느님이 누구를 사랑한다거나, 누구를 사랑하실 줄 안다거나, 누구를 사랑하실 수 있다거나, 이미 누구를 사랑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하느님은 곧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곧 사랑이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느님 자신, 하느님의 본성과 하느님 자체가 사랑이라는 뜻이다! 만일 하느님에게 성질이 있다면 하느님의 성질은 곧 사랑이시다!

 

신약 성경 안에서 가장 큰 계시는 바로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계시는 바로 인류의 가장 큰 필요이다! 우리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계시가 바로 이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 많은 추리와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또는 하느님은 사람에 대해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는가? 라고 물어보면 각 사람마다 자기의 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사람마다 하느님은 이런 저런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세상의 우상이나 만들어진 신들은 다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흉악하고 무서운 분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추측하고 더듬어 알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각종 추측을 교정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그분이 가까이 할 수 없고, 찾거나 만질 수도 없는 분이 아님을 보여주시려고 복음의 빛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 하느님은 무엇인가? 하느님은 곧 사랑이시다! 이 말에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가령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든지 잘 참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이런 사람에게 인내하였다라는 동사나, “인내하는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지금 그 인내씨가 왔다고 하거나 그 인내씨가 말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뜻은 사랑이 하느님의 성질이고, 하느님의 안팎이 다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느님에 대해 사랑하시는분이라고 말하지 말라! 또한 동사를 사용하여 하느님은 사랑 하신다고 말하지 말라!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말할 때 이것은 명사이다! 극히 인내가 많은 사람에게서 당신은 조급함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 전체가 인내인 것이다. 곧 그가 잘 참는 것은 그 사람의 성분 자체가 바로 인내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랑은 성경의 가장 큰 계시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가장 높은 인식은 곧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있어서 미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곧 그분에게 미워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과 충돌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 그분 자신과 충돌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오늘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을 미워하신다면, 이것은 하느님이 당신에 대해 문제를 가지신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에 대해 문제를 가지신 것이다. 하느님이 그분 자신에 대해 문제를 가지셔야만 미워하실 수 있고, 사랑이 아닌 미움의 행동을 취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비록 이것은 아주 간단한 한 마디이지만 가장 큰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성질과 하느님의 생명의 본질은 곧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사랑하는 것 외에 달리 행하실 수 없으시다. 동시에 그분 자신이 곧 사랑이시다! 오늘 만일 당신이 죄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시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며 어떤 의사를 가지고 계시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하고 이런 고행을 하고 근심해야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만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 만일 복음이 없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우리에게 있는 한, 당신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복음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우리 사람이란 미움뿐이다! 사실 당신과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 누구를 미워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기억하라!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 미워하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이 남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하느님이 누구를 미워하시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더러 미워하라는 것은 그분의 성질과 위배되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알렐루야! 아멘.

 

<이와 관련된 글들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하느님의 복음에 대한 중심과제 연구편을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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