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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14,1-3)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26 조회수1,56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422/주일복음말씀묵상()/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요한14,1-3)

   

 

요한14,1-2절은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1).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2)”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14,1-6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가심과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우리 믿는 이들을 아버지 안으로 이끌기 위해 오심을 본다!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1절에서 주님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요점을 계시해 준다. 하나는 주님이 하느님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주님은 하느님 자신이므로 하느님을 믿으면 반드시 주님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왜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과 같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 왜냐하면 그분이 자기가 곧 가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이 자기들을 떠나신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무소부재 하시므로 그분에게는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이 없다. 곧 그분의 가심은 사실 그분의 오심이므로 그들의 마음은 그분의 가심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들이 하느님을 믿었다면 또한 그들은 그분이 언제나 존재하시는 하느님과 같으므로 그분도 믿어야 했다.

 

1절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점은 하느님을 믿는 것은 믿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갔는가? 이 말은 그리스어 성경원문을 보면 이해하기가 보다 쉽다! 그리스어의 (in)”이라는 전치사는 안으로(into)”, 곧 믿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감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객관적인 믿음이 아니라 주관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14장의 기본 사상은 주님께서 제자들이 하느님 안에 있게 되도록 돕거나 알려 주시고자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은 객관적이지만, 믿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하느님 안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주관적인 믿음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믿음이란 그분이 하느님임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내가 체험하는 것이다!

 

많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을 믿는 것은 그저 하느님을 성경의 말씀대로, 곧 객관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하느님 안으로 이끄는 주관적인 믿음의 문제이다. 본장의 중심 사상은 반드시 우리가 믿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절의 내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삼층천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집이 하늘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에페2,21-22절은 믿는 이들이 하늘 안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영 안에서 함께 하느님의 처소로 건축되고 있다고 말한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여기서 거처(abodes)란 무슨 뜻인가? 많은 거처들은 하느님의 성전(1코린3,16-17)인 그리스도의 몸의 많은 지체들(로마12,5)을 말한다! 주님의 몸은 많은 지체들이 있고, 각 지체마다 하나의 거처이다.

요한14,23절에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와서 거주하실 것이라고말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마다 하나의 거처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건축의 거처들이다. 이 건축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모든 거처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알렐루야!

 

요한14,3절은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원문 참조)고 말한다. 내가 가서라는 말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처소를 건축하기 위해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심으로 사람을 하느님 안으로 이끄신다는 뜻이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기 위해 간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하여 구속을 성취하시고 길을 활짝 여심으로 사람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지(立地)를 확보하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14장의 중심 사상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실 것이다! 일단 우리가 하느님 안에 거하고 난 뒤에라야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신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당신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는지 아는가?

 

당신은 그분과 당신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첫 번째 장애물은 죄요, 두 번째는 우리의 많은 죄들이요, 세 번째는 세상이고, 네 번째는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이고, 다섯 번째 장애물은 죽음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육신과 자아와 옛사람 등도 역시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분리하는 것에 추가된다. 당신과 하느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이들 장애물들이 먼저 반드시 폐해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예비하시는 일을 하셔야만 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하늘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셔야 했다! 주님의 구속은 하늘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속은 하느님 안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신약 전체를 통하여 볼 때 그 중심 사상은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후에 하느님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하는 처소이시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느님을 위한 거처가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하느님, 하느님과 우리는 상호 거처이다! 주님의 가심은 그분의 처소를 건축하기 위하여 사람을 하느님 안으로 이끄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구속을 성취하여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는데, 이는 그분께서 사람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여시고 입지를 확보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구속을 성취하시려고 가심은 제자들을 위해 몸 안에서 처소를 예비하기 위함이었다.

 

가서 내가 다시 와서이 말씀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님의 가심은 제자들에게 그분의 오심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그분의 가심이 그분의 오심이라는 뜻이다. 곧 그분의 가심에 의해 오신다는 뜻이다. 주님의 가심은 그분이 떠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상 그분이 또 다른 단계로 오시는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분의 오심의 더 전진된 단계였다! 그분이 죽으러 가심은 우리 안으로 오심이었다! 주님의 뜻은 그분의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은 육신으로 오셨고(요한1,14), 제자들 가운데 계셨지만, 육신 안에 계시는 동안에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실 수 없으셨다.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는 더 전진된 단계를 취하셔서, 곧 육신에서 그 영으로 변형되심으로 제자들 안에 들어와서 거하시기 위함이었다!

 

부활 후에 그분은 자신을 성령으로제자들 속에 불어넣으셨다(20,19-22). 그러므로 그분의 가심은 바로 그분의 오심이었다! 쉬운 이해를 위해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여름에 잘 냉장된 수박을 식탁위에 놓고 쪼개기 시작했다. 수박을 쪼개고 자르는 것은 가족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큰 수박이 가족들 몸속으로 들어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잘려지고 조각난 수박은 잠시 후 모두 없어졌다!

 

그 수박은 어디로 갔을까? 그 수박은 가족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결국 수박을 다 먹은 우리 가족들은 수박가족들이 된 것이다! 수박이 떠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 몸속으로 다 들어가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수박과도 같았다! 수박 조각처럼 잘게 쪼개졌고, 과정을 거쳐 제자들 속으로 들어가셨다!

 

곧 십자가로 가셔서 그곳에서 잘려지고 과정을 거쳐 조각들로 되실 뿐만 아니라 마시기에 좋은 수박즙이 되셨다! 이제 예수님은 수박이시기도 할 뿐 아니라 수박 쥬스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시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자기 속으로 넣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가셨는데, 이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로 다시 오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영접하여이것은 주님이 우리를 어떤 장소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영접하신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자신에게로 영접하시는 것은 14,20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라는 말씀이 언급하듯이 그들을 그분 자신 안으로 넣으시는 것이다. 다시 와서 다시 오심은 그분이 부활 안에서 성령으로 오심을 표징한다! 우리 또한 죽음이 없이는 부활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하늘에 계시는가? 아니다!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주님은 제자들도 역시 아버지 안에 있기를 원하셨다(17, 21).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므로 우리도 아버지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 안에 있음으로써 제자들인 우리도 아버지 안에 있다!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셨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써 또한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 그분이 계시는 곳에 우리도 역시 있다! 이것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가능케 되었다! 죽음과 부활 전에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셨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후에 그분은 성령으로 오셔서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심으로써, 모든 제자들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마치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것과 같다. 그때에 주님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알렐루야! 아멘.

 

<‘어느 가톨릭평신도의 하느님 말씀묵상http://cafe.daum.net/yoondaniel 에 초대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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