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 안에 사시고 말씀하신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02 조회수1,16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51/주일복음말씀묵상/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 안에 사시고 말씀하신다! (요한14,7-28)

 

 

요한14,7부터 시작해서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아버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계속 말씀하신다.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들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데, 이는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우리는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 주님은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그러나 그분이 이러한 말씀들을 하실 때 우리는 아직 아버지 안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바로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시려고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장소는 물질적인 장소가 아니요, 하나의 인격, 곧 아버지였다.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셨으므로 우리를 자기 자신 안으로 이끄시려고 했다.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시므로 일단 우리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도 역시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함께 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14,20)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

이것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다! 이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야말로 상호 거처이다! 하느님은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은 하느님 안에 거한다! 이것이 상호 거처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14장의 중심사상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아버지는 근원이요 기원이며 본질이요 요소이시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의 표현이시오 나타나심이요 체현(體現)이시다.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표현 될 수 없지만, 아들이 있음으로써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가 체현(體現)되시고 나타나시고 표현되시고 보여진 바 되신다. 사람들은 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아들을 보는 한, 그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 안에 체현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죽음과 부활 이전에는 아직 사람 안으로 들어가실 수가 없으시다!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 계실 수 있고 그들에게 보여진 바 될 수 있었으나 그들 안으로 들어가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아들은 십자가로 가서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셔야만 했다.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심으로써 아들은 자신의 형태를 변형시키셨다. 그분은 육신의 모양으로부터 그 영의 모양으로 변형되셨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내가 자주 사용하는 수박을 예로 들어보자. 수박을 먹기 좋게 먼저 잘게 자르고, 먹어 소화시키는 눌러 짜는 과정을 통해 수박 쥬스로 변형되어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 것과 그것은 유사하다. 이 과정을 통하여 수박은 수박을 먹는 누구에게나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주님이 이 길을 거치시기 전에는 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지만(요한7,39), 이 과정을 거치신 후 이제는 생명의 영이 되셨다(1코린15,45). 마찬가지로 수박이 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수박 쥬스가 아직 없었다. 그러나 과정을 거친 후에 우리는 마실 수 있는 수박 쥬스를 갖는다.

 

그 영(The spirit), 곧 성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하느님 자신의 모든 어떠하심의 실재(reality)요 실재화(realization)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 영 안에서 실재화 된다! 이 영이 우리에게 도달하시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안으로 공급되고 분배되신다.

 

이 공급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과 우리가 아들 안에 있다는 것과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이 우리, 곧 우리와 그분은 연합된 하나의 실재(존재)가 되었다! 이 연합된 실재가 신성과 인성의 상호 거처이다! 이 거처에 상호 거함이 있다.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공급과 분배이다!

 

요한14,17절은 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실재의 영그리스도의 영(로마8,9)이시다! 이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실재(1요한5,6, 20)로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실재화되게 하신다!

 

이 절에서 실재의 영이신 바로 그분께서 요한14,18에서 주님 자신이신 가 되신다. 이것은 육체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시어 생명 주시는 영,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1코린15,45절은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고 말한다. 아담은 창조로 말미암아 산 혼이 되어 혼적인 몸을 갖게 되었다(창세2,7). 그리스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어 영적인 몸을 갖게 되셨다. 산 혼인 아담은 타고난 사람이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 안에서 구속을 이루기 위해 육체가 되셨다(요한1,14, 29).

 

그런 다음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을 분배하시기 위해(요한10,10)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1코린15,45). 육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아담과 같이 혼적인 몸을 가지셨다. 그러나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은 영적인 몸을 갖고 계신다. 그분의 혼적인 몸은 부활로 말미암아 영적인 몸이 되었다!

 

그분은 이제 부활 안에서 영적인 몸을 가지신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믿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곧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갈 때(into), 그분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시며, 우리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과 연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과 한 영이 된다(1코린6,17). 우리 영은 살아났으며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의 혼적인 몸은 그분의 몸과 같이 부활 안에서 영적인 몸이 될 것이다(1코린15,52-54; 필리3,21).

 

요한14,23절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할 것이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다음에 아들이 아닌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들을 사랑할 때 아버지께서 반응하시는 이유는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오시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들을 사랑할 때 곧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반향하심으로 반응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결과는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요한14,23절의 거처는 매우 중요한 표적, 의미가 풍성한 표적이다! 거처란 무엇을 표징 하는가? 거처는 인간이 하느님의 거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표징한다! 이 얼마나 위대한 문제인가! 하느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소유하시고, 그분의 거처로 만들기를 갈망하고 사모하신다! 거처는 또한 우리와 하느님이 하나 된다는 것을 표징한다!

 

우리 성경에 거처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oikos"는 집과 가족을 모두 가리킨다! 우리와 하느님이 가족과 집, 곧 거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곧 14,23절의 거처이다! 거처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 집과 가족 모두의 연합을 나타내는 표적이다!

 

이 거처를 산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 후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구속자에 대한 사랑을 분발케 하신다! 아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 기뻐하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사랑에 반응하신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을 그분이 먼저 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할 때, 우리 속 깊은 데서 아버지께서 행복해 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며 격려하신다는 느낌이 있음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세상의 종말에나 혹은 저 세상에서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그것은 가장 결정적인 핵심에 있어서, 믿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결과로서, 이미 지금 여기서 주어지는 것이다!

 

요한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요한5,43에서는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며라고 말하고, 여기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들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실 뿐만 아니라(요한10,30), 성령께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이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오시는 실재이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서 오시는 실재이시다! 이분은 결국 성령으로서 사람에게 도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 곧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실 분이셨다. 그러므로 성령은 아버지께서 보내셨고, 또한 아들께서 보내셨다!

 

따라서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오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서 오시며, 또한 아버지의 실재이실 뿐만 아니라 아들의 실재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력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이후에라야 성령이 비로소 그러한 제자들의 이해력의 한계성을 무너뜨릴 것이다!

 

요한14,27-28절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곧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원문 참조)고 말한다.

 

예수님은 단지 평화를 기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종말적 구원의 내용으로서 평화의 선물을 선사하신다. 여기서는 요한20,19-26절의 말씀을 선취하여 평화를 말씀하신다. 평화는 부활하신 분 및 아버지와 함께 삶의 교제 속에 있다(14,21, 23). 이 평화는 지금 이 순간에 제자들 속에 있는 공포와 두려움을 몰아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나오며 또 모든 것을 아버지가 목적지로 인도하신다. 아들의 오심과 그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도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다(요한18,3).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