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7,37-39)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15 조회수1,28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514()/주일복음말씀묵상/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7,37-39)

 

<생명>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없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생각뿐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 십자가의 체험을 갖지 못한다면, 또한 죄와 자아를 이기는 일에 주님과 함께한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없다!

 

그분을 위해 고난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체험이 없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듣거나 영적인 책으로부터의 십자가의 말씀을 알고 있을 뿐, 우리 자신들이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없다! 이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다만 십자가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나 지식 외에는 전달할 것이 없다! 이 주제는 너무나 엄중하며, 나의 모든 메시지는 이와 관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의해 변화될 때에만, 곧 우리가 십자가의 생명과 영을 받을 때에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분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대한 확실한 체험과 십자가의 승리를 가질 수 있도록 십자가가 날마다 우리 삶 속에서 더 깊이 역사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과 생명이 자연히 우리의 말을 통해 흘러나올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쏟아냄으로 영적으로 메마른 자들을 양육하여 변화를 체험하게 할 것이다!

 

지식이나 사상이나 이념들은 단지 사람의 두뇌에 도달할 뿐이다! 곧 그것들은 사람의 두뇌에 더 많은 지식을 가져다 줄 뿐이다. 생명만이 사람의 영에 도달할 수 있고, 그 결과 사람의 영은 거듭난 생명을 받거나 더 풍성한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이나 표현력이나 이론이나 이념들은 단지 사람의 혼을 움직이고 혼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을 자극하여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움직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평신도나 사제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생명의 현실>

<오늘날 세상의 부실한 인성 교육과 부실한 자질과 부패한 신학교육을 받고, 성경 전체를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서도 신학대학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종합운동장에 신자들을 모아놓고 인간이 제정한 화려한 의식을 통하여 어느 날 거룩한 성직자가 되어버렸다. 미사 강론 때마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그러니 성경의 말씀은 어려워 제쳐놓고, 그들에게 쉽게 와 닫는 사회적 사랑이니 사회적 복지니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니 하다가, 삶의 깊은 고난을 체험하거나 많은 독서나 깊은 고민도 전혀 없이, 어쩌면 스스로가 도저히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체념하듯이 그 돌파구로, 마침내 제주도 강정마을이니 밀양송전탑이니 대통령선거부정이니 미국놈들이니 소위 철지난 좌파 운동권 흉내를 내는 정의구현에 목숨을 거는 결사대의 일원이 되어버렸고, 마치 잃어버린 나라를 구하는 독립투사나 대단한 사상가나 되는 것처럼 그들과 동일시하는 심리적 환상에 젖어, 생명과 전혀 관계가 없는 헛된 것들로 미사 강론을 대신하는 무자격의 신부들이 한국교회 내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러니 그들의 말 이면에는 생명이 없으므로 그들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하는 능력이 없는 무자격의 사역자들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능력이 있다! 영적인 일에서는 생명이 없으면 능력이 없다! 가톨릭교회는 떡이 신부의 손을 거치면 예수의 실제의 몸으로 화체된다는 것을 교리로 정하고, 영성체 분배에 미사의 초점을 둠으로써, 영적인 중요한 부분들을 왜곡하고 은폐했다는 오랜 동안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왜곡되고 은폐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한국 가톨릭교회의 실상이다!

물론 신실하고 존경받는 영적인 사제들도 계신다! 그나마 이들로 인하여 겨우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생명의 통로>

생명만이 사람의 영에 도달할 수 있다! 성령의 모든 역사는 우리 영 안에 있다(로마8,16; 에페3,16). 우리가 영의 생명을 흘러 내보내는 영의 체험 안에 있을 때에만 성령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에 그분의 영을 쏟아 부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자신의 생각이나 표현력이나 이론으로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은 아주 헛된 것이다!

 

비록 사람이 말한 것이 외적으로는 아주 설득력 있어 보일지라도, 우리는 성령이 그와 함께 동역하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곧 성령께서 그의 말 이면에 계시지 않으므로, 그분의 권위와 능력을 통해 당연히 그와 함께 역사하시지 않는다. 신자들은 그의 말을 들을 뿐, 그들의 생활 속에는 아무런 바뀜이 없다! 비록 그들이 때때로 서원을 하고 결심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들은 그들의 혼 안에서의 흥분일 뿐이다!

 

영적인 일에서는 생명이 없으면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는 그의 생명을 통하여 그분의 생명을 쏟아 부으시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성령의 생명을 갖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말들을 실행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은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다! 생각은 사람의 혼에 도달할 뿐이고, 생명만이 사람의 영까지 흐를 수 있음을 하느님의 영이 우리로 깨닫게 하시기 바란다!

 

십자가의 생명은 주 예수님의 생명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체험을 통해 우리의 메시지를 시험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교리는 단지 교리일 뿐이다! 요한3,14-15절은 사람의 아들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원문 참조)라고 말씀하셨으며, 요한12,32-33절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그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분배하시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다. 모든 사람을 그분 자신에게로 이끄는 능력을 소유하시기 전에 그분 자신이 먼저 죽어야 했으며, 먼저 십자가를 체험해야 했고, 안팎으로 십자가의 역사하심을 소유해야 했으며, 먼저 실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셔야 했다!

제자들은 그 주인을 능가하지 못한다. 우리 주님이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기 전에 높이 들리셔야 했다면, 높이 들리신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기 전에 스스로 들려져서 십자가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들리우셔야만 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하기를 갈망한다면, 우리 또한 십자가에 들려져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생명을 쏟아 부으실 것이다! 생명의 근원은 십자가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분배함으로부터 온다! 생명의 통로 또한 십자가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분배함으로써 와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우리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다른 사람들을 살리거나 다른 사람들을 양육할 생명이 없다! 우리는 근원이 아니라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흐르며 우리 안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는 통로들이다! 통로는 막히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통로를 통하여 흐를 수가 없다!

 

십자가의 말씀은 밑바닥을 파내는 역사를 하며, 아담과 타고난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을 제거하는 능력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성령의 생명을 받을 수 있고 성령으로 적셔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명이 십자가의 생명이 되는 정도까지 우리의 영은 끊임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다!

 

간단히 이 요점을 다루겠다! 우리가 성령으로 적셔지고 있고 십자가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여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서부터 십자가의 생명을 쏟아 붓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인 노력과 가장이 요구되지 않는 어떤 것이며, 아주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 요한7,37-39절에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37).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38).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라고 하신 것의 의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사람은 그의 가장 깊은 내적 존재를 비우고 십자가의 충분한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내적 존재는 성령의 생수로 충만 되어야 한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에 넉넉할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생수로 공급하기 위해 생수의 강이 흐를 정도로 넘치도록 풍성하며 넉넉하다!

 

우리는 여기서 흐르다라는 단어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감동이나 음성이나 심리나 능변이나 교리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방법들이 때로 우리를 도울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생수가 아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것도 생수를 흘러 내보내게 하지 못한다! 흐른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어떤 것이다!

 

통로가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것이 없으면 성령은 우리와 함께 일하실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후에 우리의 모든 일은 증거의 본성을 띄게 될 것이다(루카24,48-49). 사실상 우리의 모든 일은 주님을 위한 하나의 증거이다! 증인은 그가 보지 않은 것을 증거할 수 없다! 사람은 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것도 증거할 수 없다!

 

엄중하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전하는 말에 그의 체험이 결여되었다면, 그는 거짓 증거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성령은 우리와 함께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는, 역사하는 이가 성령이든 악령이든 능력의 출구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말에 체험이 결여되어 있다면, 성령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그분의 생명을 쏟아 붓는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체험>

그러므로 우리가 전한 그 십자가에 우리가 먼저 못 박혀야만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분배하기 원하는 그 생명을 우리가 먼저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가 날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십자가가 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전한 메시지가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려면, 그것이 먼저 우리 영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날마다의 삶 속에서 고난을 통해 우리 생활 속으로 불태워져야 한다!

 

이로써 우리의 모든 움직임에는 십자가의 흔적이 있게 될 것이다! 그들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만이 주 예수를 전파할 수 있다(갈라6,17).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문득 여러분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나 여러분이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은 청중의 미소를 자아낼 수 있을지언정 지속적인 효과는 갖지 못할 것이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바오로 사도를 깊이 만졌다! 그의 생명은 십자가의 생명의 표현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전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산 사람이었다! 그가 전한 십자가는 그가 살았던 십자가였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말했을 때 그는 거기에 자신의 체험과 증언을 더할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체험 안에서 자신의 십자가로 취하였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내가 못 박혔다고 말할 수 있었다(갈라6,14).

 

그의 온유함, 인내, 약함, 눈물, 고난, 감옥 생활 등은 모두 십자가의 생명의 표현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산 사람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전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가 실행하지 않은 것을 전할 수 없다! 바오로는 그의 복음을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영적인 자녀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 사람 자신이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했으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십자가를 재생시킬 수 있었다! 알렐루야! 아멘.

<나는 이것을 전하기 위하여 http://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평신도의 하느님말씀묵상을 열었고, 날마다 그분만을 의지하며 이글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