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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자 성호로 고백한 그 사랑만이 / 삼위일체 대축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2 조회수1,436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루에 몇 번이나 십자 성호를 긋는지 세어 본 적이? 기도할 때뿐만 아닌 일을 할 때에도 성호를 긋는다. 물론 마칠 때도 그을게다. 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가 은총을 우리 안에 새기자는 뜻이리라.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우리 안에 모시자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을 우리 삶에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어느 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하여 묵상하며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고는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열심히 퍼 담는 것을 보게 되었단다. 성인께서는 ‘이 아이와, 삼위일체 하느님을 우리 머리로 이해하겠다는 내 자신 중 누가 멍청한 자냐?’라고 자문했다나.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분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진리로 이끄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 또 앞으로의 일들을 알리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신다. 나에게서 받은 것을 알리시기에.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너희에게 알릴 것이리라.”(요한 16,13-15 참조)’

 

사랑을 해 본 이라면 삼위일체의 단일과 다양한 양면을 알 수 있단다. 남녀 사랑에서 ‘단일성’을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남남이었으나 서로를 알면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그리하여 서로 닮는다. 그러면서 더는 둘이 아닌 한 몸이 된다. 또한 부모자식의 사랑에서 ‘다양성’을 보자. 처음에는 어머니 배 속에서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러다 아기로 태어나 자라면서 조금씩 그 거리가 멀어진다. 배 속에서 품으로, 품속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온 지역으로 점점 멀어진다. 이렇듯 부모자식은 처음에는 온전히 하나였다가 사랑이 성숙되면서 각자의 삶으로 나눠진다.

 

사실 우리는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그때마다 성삼위이신 그분과 하나 되어 어느덧 세속의 ‘나’는 없어지고 ‘사랑’이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 남는다. 날마다 수없이 바치는 ‘십자 성호’를 통해 내가 온통 사랑으로 존재될 때 그분과 함께하는 진정한 내가 완성될 게다. 이렇게 그분을 향한 성호를 그으면서 의당 보여주는 행위가 아닌 온전히 그분께 봉헌하는 ‘나’가 되어보자. 그러면 이 오늘이 내일 또한 그분과 하나 되는 새 오늘이 될 게다. 그게 사랑일 게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가장 완전한 상호 친교로 사랑을 이룬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우리 ‘삶의 자리’에 모시는 거다.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하면, 삼위이신 하느님과 하나 될게다. 그리하면 우리 안에 사랑만이 남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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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삼위일체,십자 성호,사랑,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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