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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이 묻어있는 말, 화가 묻어있는 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2 조회수1,26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삼위일체 대축일


<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


복음: 요한 16,12-15






책을 보는 성모자


보티첼리(Botticelli, Sandro) 작, (1483), 밀라노 폴디 페촐리 미술관


 

< 사랑이 묻어있는 말, 화가 묻어있는 말 >

 

허공에의 질주란 영화는 1971년 네이팜탄 투하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군사 실험실을 폭파하다가 실수로 경비의 눈을 실명케 해 FBI에 쫓겨 다니며 15년간 도피생활을 해온 아더와 애니 부부의 아들 대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니는 동생 해리와 부모님과 함께 6개월마다 이름과 머리 색깔, 눈동자 색깔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이들 가족에겐 이들 가족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마을에 정착한 대니는 새로 들어간 학교에서 음악 선생인 필립스에게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그 집 딸인 로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언제 또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대니는 로나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기를 주저합니다. 필립스 선생의 추천으로 줄리어드 대학에 입학시험을 보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 통지를 받지만 이전 학교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입학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전 기록을 드러내게 되면 부모들이 더 이상 그의 곁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영영 이별을 해야만 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와 함께 생사고락을 했던 친구가 경찰과의 대치 도중 사살 당하게 되어 부모는 그 마을을 떠나기로 합니다. 대니는 로나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부모와 동생이 탄 트럭을 향해 달려옵니다. 그때 아버지는 대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대니 주위를 차로 빙빙 돌다가 떠나버립니다. 로나와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신의 꿈을 펼칠 것을 바라며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지만 그의 곁을 떠나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안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희생이 들어있습니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겨야 참다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자신의 피가 묻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화가 나서 쏘아붙이는 잔소리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말씀은 곧 생각의 반영입니다. 말씀이 그리스도이시라면 생각은 아버지이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아버지의 생각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힘이 있어야하는데 그 힘이 바로 입니다. 숨이 없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데 그 숨이 바로 성령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적 대화법이란 바로 말씀은 생각을 어김없이 표현하기 위해 진실해야 하는 것이고 그 말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과 함께 도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진실된 말 안에 항상 성령님이 함께 계셔야 그 말이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을 때 반드시 물을 주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힘도 함께 주어져야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남발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친절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친절히 예화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화가 나서 하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화는 열이고 물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 거북하기만 한 말은 설사 그것이 진리일 지라도 상대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잔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란 바로 사랑이요 자신을 내어줌을 의미합니다. 그 피와 함께 전달되는 말이라야 상대의 가슴 안에 심겨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패치 아담스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을 때 다람쥐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는 한 정신병자가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저지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람쥐는 당신이 만들어 낸 것이고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윽박지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지금 자신을 공격하려는 다람쥐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아담스는 대걸레를 잡고 다람쥐들을 총으로 쏘듯이 다 죽여 버립니다. 모두가 다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알아주는 아담스의 행동에 진짜 다람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그는 안전하게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게 됩니다. 맞는 말만 하는 이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의 말은 들어야하지만 그들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자신들을 위해 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반드시 간이 되어야 하듯이 말 안에 성령께서 함께 버무려져있지 않다면 그 말은 삼위일체가 깨진 말인 것입니다.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의 배갑진 선생님. 선생님은 베테랑 고3 담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야단치며 바로잡아줍니다. 항상 옳은 말만 합니다. 수학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고 아이들도 선생님의 수업에 만족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매를 때릴 때 당연히 맞아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선생님 곁에는 항상 매가 있습니다. 카메라를 봐도, 졸아도 선생님은 손바닥을 때립니다. 매를 들지 않으면 아이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매를 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번호를 불러 갑작스런 질문을 합니다. 아이들은 기습질문에 당황합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선생님은 잘 가르치시지만 두려움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매가 아니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친구들은 매를 맞고 갑작스런 질문에 당혹한데 아이들은 웃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아이들이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선생님은 행복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매를 들고 있는 모습의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은 없습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옳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받아주고 믿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께서 충만하게 오시기 이전에는 당신의 말을 전부 해 버릴 수는 없으신 것입니다. 이는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입니다. 상대를 먼저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먼저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껴야 그 사람 안에서 나의 말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하는 말로 나의 생명이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말이 곧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곧 숨이고 피입니다. 말을 주는 것은 곧 생명을 주는 것이고 나 자신을 함께 건네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숨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말씀으로 세상에 건네주시면서 당신 피도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마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깊이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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