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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에 겨운 행운보다 일상의 행복을 / 연중 제 8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6 조회수1,072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것을 보면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는 태생 소경이 아닌 지니고 있던 시력을 잃어버린 이일 게다. 그는 자신에게 지극히 중요한 무엇인가가 결핍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중요한 장애와 간절한 열망을 반드시 채워 주실 분’이시라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남들은 다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데도 그는 왜 소리를 질렀을까? 그들 가운데에서도 적지 않은 이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메시아시라고 믿었으리라. 그런데 왜 그들은 바르티매오를 꾸짖고, 그는 저지를 당하면서도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었을까? 사실 그에게는 이렇게 예수님의 도움이 너무나 절실했다. 그래서 지금 예리코를 떠나시는 그분을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앞 못 보는 그가 예수님을 찾아가기도 힘들었을 텐데, 마침 ‘자기 곁’을 지나신다니 당장 그분만은 정녕 붙잡아야 했을 것이다.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그 외침이 얼마나 애절한지 우리는 모를 게다. 볼 수 없는 장님 심정을 어떻게 짐작할 수가? 잠시만 보이지 않더라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을 영원히 지속해야 하는 그의 운명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십자가이리라. 바로 이 십자가의 고통을 안고 있는 그가 예수님 소문을 듣고 희망을 가진다.

 

“그분이라면 눈을 뜨게 해 주시겠지!” 그는 희망을 믿음으로 바꾸며 애절하게 매달렸을 게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자비를 청한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달려갔다. 그가 바란 것은 ‘돈 한 푼 달라.’라는 게 아닌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준비된 이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눈을 뜬 그는 평생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이에게 ‘그분만을 믿고 바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리라. 우리는 어떤가? 주위를 제대로 바라나 볼까? 자신의 삶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다른 이에게서 긍정적인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게다. 왜냐하면 아예 자신이 ‘눈먼 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기에.

 

우리 구원과 치유도 믿음으로부터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를 체험하였을까?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기뻐한 적은? 우리도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하느님 찬미하는 이가 되자. 예수님은 준비된 바르티매오를 뜨게 하셨다. 우리도 영적 깨달음을 청해야 은총을 만날 게다. 네 잎 크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란다. 그러나 세 잎은 ‘행복’이다. 언제나 행운만을 쫒다 보니, 늘 곁의 행복을 못 보는 장님 생활은 아닌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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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행운,바르티매오,소경,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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