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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5.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6 조회수1,23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독서 1베드 2,2-5.9-12

사랑하는 여러분,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마르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어제 피정 특강이 있었습니다.

이 특강 중에 하나의 영상을

보여준 뒤에 갑작스럽게 형제,

자매님들께 마이크를 갖다

대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지요.
“어른이 된 형제님께

(자매님께) 여쭙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갑작스럽게 질문을 해서인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건강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꿈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꿈이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멋진 꿈입니까?

이런 꿈은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몸을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또한 행복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며 산다는 것 역시

기준 자체가 모호합니다.

만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녀가 잘 되는 것은

내 꿈이 아니라 자녀의 꿈이지요.

 내 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녀와의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내 꿈이라고 생각하기에

 간섭하면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호한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꿈,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꿈,

남의 꿈이 아니라 나의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주님께서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너의 꿈은 뭐니?

내가 너의 꿈 3개를 지금

당장 들어줄게.”

라고 말씀하실 때,

곧바로 말할 수 있는 나만의

 구체적인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릴 것만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외치지요.

사람들이 말리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소원을 그리고 꿈을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 합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자신의 꿈과 소원을 늘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꿈과 소원이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과 소원을

가지고 있었던 바르티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나만의 꿈과

소원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 꿈과 소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바로 믿음을 놓지 않는 사람이고,

이렇게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끝까지 해낸 게

기적이 아니라 시작할

용기가

있었다는 게 기적이다.

(존 빙엄)

멋진 글이라 옮겨와 봤습니다.

두 가지 진실을 받아들이기

인간관계

안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받을 것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반드시 받아야 할

빚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좋은 일을 해왔어.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이 덕을 보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를 합니다.

나를 인정해주고,

또한 내가 어렵고 힘들 때에

내게 반드시 도움을 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행동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따라서 이제는 이 두 가지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째는 내게 빚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조차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라는 말들을 자주 하지요.

그런데 그러한 기대조차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빚을 진 사람은

오히려 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도움 받는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세상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답례로 뭔가

좋은 것을

줘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이 두 가지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받는

아픔과 상처는

많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쁨과 행복이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성 필립보 네리 사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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